숲속도서관 2층에서 내다 본 통창 뷰. 강동구청 제공 '도서관'이란 무엇일까? 흔히 하는 말로, 온갖 종류의 책,출판물 따위의 자료를 모아 두고 볼 수 있게 한 시설이라고 한다. 도서관은 특별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도서관에 대한 개념 규정은 무척 특별할 수 있다.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인생독서'란 책을 보면 도서관은 "인생의 모험들 속에서 나는 나의 인생의 시간을 탕진하고 낭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김영란 선생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빌려 '도서관'을 설명한다.
플라톤에서 이어지는 근대철학은 이데아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니체에 이르러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되었다. 보르헤스는 총체적인 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우주의 어떤 책장에 그러한 총체적인 책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영란 선생은 이렇게 정리했다.
"도서관이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숨겨진 보물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엄청난 행복감을 느낍니다.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정작 필요한 책을 찾을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 삶과 인생에 '정답'이 있을리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려고 단 하나의 책을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걸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단 하나의 책을 찾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나와 우리와 맞아떨어지는 책들을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런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강동 숲속도서관을 찾아갔다. 서울 강동구 명일근린공원 옆에 위치한 아담하고 근사한 도서관이다. 이름 그대로 숲속의 도서관이다. 도서관 옆 숲속 공원은 젊고 활기차다. 참나무과 나무들이 그득하다. 폭이 너끈하게 3~4미터쯤 되는 산책길이 아주 시원하다. 서울시내 동네 공원 가운데 이렇게 싱싱하고 생생한 자연을 가진 공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숲길을 잠시 걸으면 저절로 치유될 것 같은 공원이다. 또 책을 읽다가 숲으로 불현 듯 달려가면 어떤 독자는 '칸트'처럼 사유할게 될지도 모르겠다.
강동 숲속도서관은 '매력'을 발산한다. 첫째는 숲과 독서가 어울리는 도서관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은 지상 3층이지만 층고가 높아 무척 개방적이다. 도서관의 삼면은 온통 숲속 통창뷰 좌석을 갖고 있다. 숲속을 마주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멋진 장소인 것이다. 편안해 보이는 1인 의자에서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숲이 압권이다. 공원 숲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해도 숲과 독자는 순간과 시간.공간을 공유한다. 사실 그들은 아직 서로 아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둘 다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겼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강동숲속도서관의 최재천 서재. 강동구청 제공도서관의 또 다른 매력은 숲과 과학이 어울려 있다는 것이다. 이 도서관은 전국 도서관 가운데 '진화론'에 관한 장서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8월이면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떠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장서 가운데 '진화론'과 관련된 책 1,200권을 이곳에 기증했다. 1.200권으로 채워진 '최재천 서재'는 감탄스럽다. 벽면에 세워진 책장은 지상 2층과 3층을 오픈 공간으로 연결해 웅장하다. 서재의 제목처럼 알면 사랑할 것 같다.
최재천 선생은 숲속 도서관을 "대한민국 최고의 도서관"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숲속도서관이 '과학전문 도서관'이라는 말에 솔깃했다고 한다. 과학전문 도서관은 이수희 강동구청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 구청장은 "미국 라스베가스 CES에서 인공지능(AI) 전시를 보다가 '생활속 과학 중심 도서관'을 착안했고, 수원 스타필드의 별마당 도서관을 본 뒤 높은 층고의 개방감 있는 서재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진화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하게 모아놓은 곳이 되었다. 이 도서관은 '정적'인 곳이 아니다. 조용히 책만 읽는 수동적 장소가 아니라 궁금증을 해결하고 자연스럽게 책과 놀고 질문하며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를 가진 엄마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 탐구하는 청년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도서관을 둘러보는 이수희 강동구청장. 강동구청 제공도서관의 세 번째 매력은 청소년 자료실에 최초로 적용된 북큐레이션 방식이다. 이른바,'T분류법'이라고 한다. T는 'Teen'에서 따왔는데 공공도서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십진분류법이 아니다. 사서가 직접 만든 T분류법은 청소년들의 관심사와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예를들어 TA는 '꿈 또는 영감'을 다룬 책을 꽃아 놓은 곳이고, TB는 취미.취향.트랜드를 반영한 책을 전시한 서가다. TC는 이야기.스토리텔링, TG는 나.정체성.성장, TH코너는 다양성.연대감을 반영한 책들을 진열했다. 백지연 숲속도서관장은 "청소년들에게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K-POP 가사의 문장을 연결한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숲속도서관이 독자개발한 청소년도서 T분류법. 강동구청 제공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식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앎을 위해, 현실을 잊기 위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때로는 위안을 얻기 위해 또 때로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독서를 할 수 있다. 강동 숲속도서관은 그 독서의 목적이 무엇이든 알맞은 공간이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지끈거리면, 아니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싶다면 근처 명일공원 숲속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독자는 위안을 얻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영란 선생의 <인생독서>는 말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인생에 관한 모든 것이 쓰여 있는 책도 존재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고유성을 변호하고, 깜짝 놀랄 만한 미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책이지요. 그 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한권의 책을 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설혹 그 책을 찾았다 해도 책을 펼쳐든 순간 그 책의 내용은 그에겐 무의미해질지도 모르지요."
독자가 비록 '인생의 비법과 해답'을 오늘 찾지 못할지언정, '탐험'만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숲속도서관에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