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연합뉴스내란 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씨. 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씨는 경찰의 3차 출석 요구에 불응하겠다는 의견서를 17일 제출했다. 다만 자애롭기 그지없게도, 서면조사나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출석 조사는 고려해보겠다는 의견을 같이 담았단다.
그 하루 전날, 윤씨의 아내 김건희씨는 서울 한 대형병원에 찾아가 지병을 이유로 입원했다. 그 사흘 전 외래진료를 받은 뒤 입원을 결정했으나 "위중한 상황은 아니다"란 설명도 흘러나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이미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출석 조사'를 자애롭게 검찰에 시전한 바 있다.
위중 여부는 모르겠다. 관심도 사실 그닥 없다. 그러나 타이밍만큼은 인정한다. 절묘한 동시에 운명적이다. 윤씨의 삼세번 거부에 더해, 윤씨 대행이던 최상목씨의 거부까지 4전 5기 끝에 여의도 밖으로 나온 특검법이 굴러가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민수 검사' 아닌 수사관만 사칭해도 서민들은 벌벌 떨며 몇억씩 뜯기는 세상이다. 민중기 특검에 특검보 4명, 파견검사 40명, 특별수사관 80명까지 '특짜 붙은 진짜' 검객 205명이 본격 달려들 생각을 하자면 없던 지병도 절로 생길 법하다. 물론 고생할 200여명을 생각하자니 글쓰는 이도, 국민들도 마음이 아파온다.
혐의도 어디 한두 개인가. 심지어 '우두머리' 윤씨의 11개보다 다섯 개가 더 많다. 생업에 흘깃흘깃 지나친 민주시민들을 위해 그 제목만이라도 다시 기록해둔다.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먼저 윤씨가 피하고 싶을 내란 특검은 이렇다.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 행위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통한 국회 '반국가 세력' 지칭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불법 점거한 행위 △군 병력을 이용한 국회의원 불법 체포 시도 △실탄 및 중무장 계엄군 투입 및 살인 예비 음모 가능성 △전투용 헬기와 장갑차를 국회에 투입하려 한 계획 △특전사·수방사 국회 투입 계획 △국회 기물 훼손 및 국회 직원·보좌진에 대한 유형력 행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점거 및 서버실 통제 시도 △대북 확성기 방송 등 외환 유치 행위 의혹 △계엄 선전·선동을 통한 내란 예비 및 음모 행위를 판다.
김건희 씨. 박종민 기자김씨는 더더욱 숨이 가빠올테니 일단 심호흡 5초.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으로 1200억대 불법수익 △코바나컨텐츠 협찬 명목 500억대 뇌물수수 △명품 가방·다이아몬드 목걸이 수수 △명태균·건진법사 등의 국정농단·인사개입 △블랙펄 이종호 매개로 임성근 구명 로비 등 개입 △투기 목적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개입 △대우조선 파업 민간인 불법 개입 및 창원산단 지정 특혜 △22대 총선과 2022년 재보선 등 부당개입 △명태균 통한 불법 무상 대선 여론조사 △21대 총선 공천거래 등 선거개입 △윤씨 재임중 대통령 지위·자원으로 사익 추구 △대선 전후 허위사실 공표 및 공직선거법 위반 △상기 사건들 수사 고의 지연·은폐·비호·인멸 교사 △상기 사건들 조사·수사 방해 △수사 과정에 인지된 관련 범죄행위 및 특검 수사 방해 행위 등 16개 혐의가 김건희특검이 풀어낼 퍼즐이다.
이쯤 되면 숨도 막히지만 기도 막히다. 이 많은 범죄 혐의를 '꼼수'와 '시간 끌기'로 모면하자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가. 이런 계산속을 허용하는 대한민국의 썩은 인프라는 또 온당키나 한 것인가. 분노도 부끄러움도 왜 항상 국민 몫인가.
'날'이 아닌 '시간' 계산으로 윤씨에겐 자유 활보를, 내란의 나날 잠못 이룬 국민들에겐 또다시 불면의 분통을 안긴 법원의 시간에도 이랬다. 즉시항고조차 않고 이를 방치한 검찰의 시간에도 그러했다. 좀더 거슬러 청와대 버리고 외교장관 내쫓고 떡하니 관저라 문패 바꿨을 때도, 법원 발부한 체포영장 피하겠다며 거기에 철조망 두르고 바리케이트 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윤씨 부부 같은 이들의 '요새'가 비단 관저나 병상뿐일까. 800원 2400원 횡령했다며 버스기사들 밥줄 끊는 판사들의 나라, 검찰총장과 민정수석이 비화폰으로 쉬쉬하며 통화하는 나라, 그 민정수석이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출석 조사' 십여일 전의 김씨와도 비화통화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나라. 나라 전체가 그들만의 요새이자 서식처인 셈이다.
국회 청소 노동자와 기념 촬영하는 이재명 대통령 부부. 연합TV 캡처자칫 분노만 남을 졸문에 희망 한 줌만 섞는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요새도 벌써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회 실내에서 간소하게 치른 취임선서 직후 청소노동자들부터 찾아간 자리, 그 지점에서 진지전도 기동전도 비롯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