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권 바뀌자 SPC 압수수색…생명경시 관행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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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대책 미흡과 솜방망이 처벌이 키운 중대재해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의 모습. 연합뉴스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의 모습. 연합뉴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19일 SPC삼립 제빵공장에서 숨진 50대 여성 근로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삼립 본사와 시흥시 소재 공장에 수사관과 근로감독관 등 80여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당국이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29일 만으로, 만시지탄일 따름이다.
 
2022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는 근로자 사망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거나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볼때 중대재해를 대하는 당국의 기류에 새 정부 출범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수사당국은 압수수색을 통해 사고가 발생한 생산라인의 공정 전반은 물론 작업절차, 사고 예방 조치와 관련된 서류, 전자정보를 확보해 진상을 규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지난달 19일 새벽 3시쯤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를 세우지 않은 채 안쪽으로 들어가 컨베이어 벨트 측면 부위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도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2인1조 근무원칙을 지켰는지와 끼임을 감지하면 작동을 중단시키는 인터록이 설치돼 있었는지도 조사중이다.
 
SPC 계열 제빵공장의 사고는 상습적이다. 최근 발생한 세 번의 사망사고 모두 끼임 사고였다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2022년 10월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했다. CCTV 확인 결과 동료 없이 혼자 작업중이었고 안전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8월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숨졌다. 반죽용기의 상승과 하강시 울려야 할 경보음은 울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빵공장 뿐 아니라 건설현장 등에서도 대형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만 3년이 넘도록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지 않고 있는 주된 이유는 바로 솜방망이 처벌과 생명경시 풍조 때문이다.
 
2022년 평택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1심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이 구형된 강동석 전 대표이사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번 사고에서도 수사당국은 현장감식과 함께 압수수색이 필수라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차례 청구했으나 법원이 번번이 기각하다가 최근 4번째 청구 만에 영장을 발부했다.

'빵보다 목숨값이 싸냐?'

경영논리가 앞설 경우 작업자의 안전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 취지는 최고경영자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책임 범위를 넓힘으로써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정신이 산업현장에서 지켜지도록 강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경영자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게 대전제인데 이게 허물어지니 현장에서 안전은 슬그머니 뒷전이다.
 
지난 2022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박종민 기자지난 2022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박종민 기자
2022년 평택 사고 이후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당시 허영인 SPC회장은 대국민사과와 함께 "안전에 1천억원을 투자하고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며 재발방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듬해 또다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안전에 투자한다던 1천억원이 실제 투입됐는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 지는 의문이다. SPC삼립 대표이사는 지난달 사고 직후 "재발방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또다시 앵무새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장에선 '사측이 보여주기식 대책만 반복한다', '정작 현장은 변한게 없다', '빵보다 목숨값이 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SPL 노조간부는 "2022년 평택사고 이후 SPC는 노후 설비를 교체하지 않고, 안전 스티커를 붙이는 보여주기식 대책만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안전도 당연히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국민의 교통질서가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것은 범칙금과 캠페인이 꾸준히 시행된 결과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관행이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 걸맞는 엄격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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