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실 제공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을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조직하기 위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와 용산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탄핵심판이 길어지며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던 상황에서 직무정지된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이들이 정권의 존속에만 골몰한 셈이다.
12일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한 전 총리의 직권남용 등 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아직 잡히지 않았던 올해 3월 말 대통령실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대응문건을 작성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헌법재판관 미임명과 비상계엄에 조력했다는 이유로 탄핵됐다가 3월 24일 탄핵소추 기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막 복귀한 참이었다.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 A씨가 작성한 '정국 참고자료(3.28)' 문건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청구가 인용되도록 하는 전략을 진행하려 한다'며 이에 대응해 국회의 동의 여부를 불문하고 헌법재판관 후임자 임명을 강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 ▶ 한덕수 등 직권남용 혐의 공소장 中 '정국 참고자료(3.28)' 문건 취지 |
더불어민주당이 마은혁을 재판관으로 임명하고 재판관 문형배, 이미선의 임기를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의 방법으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진행하려 한다. 따라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다시 탄핵소추되기 전에 신속하게 문형배, 이미선의 후임자를 지명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한 후, 그 동의 여부를 불문하고 20일의 법정 기간 경과를 통해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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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당시 홍철호 정무수석에게 보고됐고 대통령비서실은 한 전 총리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인을 임명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헌재는 4월 1일 전격적으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사흘 후인 4월 4일에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전 총리 체제의 대통령실이 재판관 후임자 선정 등 후속 작업에 나서기 전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다만 헌재에는 여전히 조지호 전 경찰청장을 비롯해 다수의 탄핵심판과 비상계엄 관련 헌법소원·권한쟁의심판 등이 계류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은 한 전 총리는 물론 그의 궐위시 대행을 맡는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도 수시로 압박했다.
이에 한 전 총리와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은 향후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 전에 윤석열 정부 기조에 부합하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들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국무회의 개최 예정일인 4월 8일 오전까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하기로 하고, 그에 수반돼야 할 인사검증은 외관상 근거만 갖춰 외부의 지적을 피하기로 결의했다고 판단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구체적인 범죄사실을 보면,
후임 헌법재판관 임명엔 단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4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로 김주현 전 민정수석을 호출했고, 김 전 수석은 대통령비서실에서 정진석 전 비서실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한 전 총리에게 갔다.
특검 수사 내용에 따르면 한 전 총리가 김 전 수석에게
"내일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임명할지 추천을 하라"고 지시하자, 김 전 수석이
구두로 법조인 10여명의 이름을 읊었다.
김 전 수석이 언급한 이름들 중 한 전 총리는 당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찍었다. 별다른 검토는 없었다. 대신 내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지명할 수 있게 신속히 검증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뒤따랐다.
김 전 수석은 대통령비서실로 복귀 후 정 전 실장에게 이를 공유했다. 또 이완규·함상훈 후보자들에게 지명 사실을 알렸는데, 당시 이 처장은 즉시 수락했고 함 부장판사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당일 오후 2시쯤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함 부장판사에게 다시 연락했다. 함 부장판사의 수락 의사를 확인한 후로는 "일정이 촉박하니 오늘 중 인사검증 관련 서류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인사검증 담당 실무자들에게
"오늘 중으로 인사검증을 완료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실무자들은 "청문직에 해당하는 이들의 인사검증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검증과 경찰청 세평조회, 국가정보원의 신원조사를 거쳐야 한다"며 "
당일에 결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사정보관리단 검증과 세평조회, 신원조사 의뢰는
생략하겠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이 전 비서관은 "
그렇게 하라"고 승인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검증 안된' 인사검증보고서가 작성됐다. 이 전 처장과 함 부장판사가 7일 밤 직접 작성해 이메일로 보낸 '공직 예비후보자 자기검증 질문서'에 담긴 내용이 그대로 검증보고서에 실렸다. 범죄·수사경력, 징계, 연구윤리, 세평 등 다양한 항목이 제3자의 교차검증을 거치지 않고 '검증됐다'는 취지로 작성됐다.
이 전 비서관은 해당 보고서를 이튿날인 4월 8일 오전 7시에 보고 받았다. 그러나 임명하겠다는 결론을 정해둔 이상 검증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특검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은 물론 정 전 실장도, 한 전 총리도 보고서를 받아보지 않았다. 3시간 후 한 전 총리는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헌법재판관 임명은 제가 가장 깊이 고민한 현안 중 하나였다"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함상훈을 지명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와 정 전 실장, 김 전 수석, 이 전 비서관이 직권을 남용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검증 담당 실무자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각종 인사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 헌법재판관 적합 여부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문제없음' 결론의 검증보고서를 작성케 했다는 것이다.
또 관련 법률상 인사 검증에 관한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국가정보원의 경우 이들의 직권남용으로 인사검증 또는 신원조사에 대한 권리행사가 방해됐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