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자료사진)
대학생 김연진(23·여) 씨는 최근 들어 포털 사이트에 달린 댓글은 일부러 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여성의 성기를 빗대는 등 이른바 ‘일베산(産)’ 여성 비하 표현들이 너무도 쉽게 눈에 띄어, 금세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김 씨는 “여자들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게 굉장히 불쾌하다”며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원정녀’라고 부를 땐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했다.
5.18민주항쟁 등을 왜곡하며 극우적 역사관과 정치관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일간베스트저장소'.
하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반(反)여성적, 반사회적 행태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 비하'는 그야말로 일베의 핵심 코드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일베의 게시물을 분석해 보여주는 사이트인 '일베 리포트'를 보면, 일베의 핵심 키워드 1위는 욕설인 'X발 X나'였고 2위가 바로 '여자'였다.
이러다보니 일베 사이트에서는 여성을 성적 도구, 심지어 성폭행 대상으로 거리낌없이 표현하는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대상엔 연예인과 일반 여성들은 물론, 어린이와 종군 위안부까지 포함된다. 여성 혐오에 노소를 가리지 않는 셈이다.
초등학생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과 함께 '로린이'란 표현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임용을 포기한 예비 초등 교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로린이'는 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로, 어린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일베 용어다.
현실에서 곧바로 성범죄로 직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게시물들도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엔 한 아이돌 그룹의 여성 멤버가 그려진 입간판을 쓰러뜨려놓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모습의 사진이 올라와 논란을 빚기도했다.
이들이 보통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도 저급하고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일베 사이트내 여자 관련 전체 4321글의 예시를 보면, 대다수가 '김치년', '00년' 등의 단어로 작성됐다. 내용도 무조건 여성을 비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김치녀'는 그나마 점잖은 수준. 여성을 노골적으로 폄하해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단어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보슬아치'다. 여성 성기에 빗대 '여자인 게 벼슬인 줄 안다'는 의미를 내포한 일베어(語)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여성들의 성향을 분류해놓은 글에서조차 'XX(여성 성기를 지칭)가 드글드글한 학교에서의 XX 패턴' 식으로 표현하기 일쑤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해괴한 단어들이 일베 내부를 넘어, 포털 등 다른 인터넷 공간은 물론 심지어 현실 세계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의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일베에서 생겨난 여성 비하 표현들이 주르륵 달려 있다.
'내연녀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 남자가 칼부림했다'는 한 기사의 댓글에는,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성적으로 폄하하는 일베어들로 가득차 있었다.
특히 기사 내용이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내용이면 댓글의 저열함은 한층 심각해진다.
'한국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OECD 최상급에 속하지만 사회진출 비율은 하위권에 머문다'는 통계 기사에는 "역시 김치녀들은 어쩔 수 없다"는 비아냥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직장인 허모(25·여) 씨는 “미성년자 아이돌 사진 기사에 김치년이라고 욕하거나 여자들의 성기를 빗대 말하는 댓글이 '베플'(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댓글)인 걸 보면 불쾌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초중고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표현들을 따라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중학교쯤 되면 남학생 대부분이 ‘김치녀’란 단어를 쓴다"는 게 일선의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폭력 상담가는 "한 유명 사립고에서 여성 혐오와 관련된 강연을 했더니, 남학생들이 '우리 반에 일베하는 애들 세 명 있으니 신상 털리기 전에 입조심하라’고 하더라"며 혀를 찼다.
"일베를 하든 안 하든, 일베 식의 ‘여성 혐오’에 동조하는 남학생들이 대다수"란 얘기다.
또다른 성폭력 상담가 배모 씨는 “역사 왜곡보다 더 심각한 일베의 문제점은 바로 여성 혐오"라며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여성 물화(物化) 경향과 집단 문화가 결합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 이윤소 씨는 그 배경으로 '익명성'과 '열등감'을 꼽았다.
CBS노컷뉴스 전솜이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