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포착된 투표용지 추정 물체 모습. 유튜브 '애국청년 박준영' 캡처. 12.3 내란사태로 조기에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의 사전투표 열기가 뜨겁습니다. 이틀간 진행되는사전투표 첫날 투표율이 19.58%로 20%에 근접했습니다. 주권자로서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열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권자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사전투표소(옛 신촌동 주민센터)에서 관외투표자가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들고 투표장 밖으로 나가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중앙선관위는 기표 대기줄이 투표소 밖까지 이어져 30~40명이 30m 정도 줄을 섰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관외투표자 대기자들은 밖에서 한시간 넘게 대기하기도 했고, 심지어 투표용지를 들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투표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3년 전 20대 대선 사전투표 때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발생해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된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게 하고 참관인이 받아서 대신 투표함에 넣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투표소에서는 플라스틱 소쿠리, 종이 상자, 비닐 팩 등에 유권자의 투표용지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가 투표함에 들어가는 걸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선관위에서는 투표용지 외부 반출에 대해 "투표용지를 투표소 밖으로 가지고 나가선 안 된다는 명확한 법 규정은 없다"고 해명 했습니다. 그러나 투표용지가 투표소 밖으로 나간다는 건 대리투표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매우 부적절한 일입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신촌동 선거구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사전투표를 한 곳으로 오전 일찍부터 인파가 몰렸고 관외투표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인데도 선관위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겁니다.
중앙선관위는 직원 부정채용과 20대 대선 때의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왜냐 3년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혁신위원회'를 설치해 20대 대선 부실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혁신위원회의 진단은 "격리자 등의 사전투표 참여 수요와 소요시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였고, 수도권 등에 격리자등이 집중되어 있는 점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였으며,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임시기표소 투표방식을 사전투표에 사용한 점" 등이었습니다.
연합뉴스이번에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사전투표가 예고돼 있었고, 대학가 특성상 관외사전투표자가 관내투표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전투표소 면적이 협소(68㎡)하여 선거인 대기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사전투표관리관이 관외사전투표자 대기공간을 외부로 이동"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실선거' 책임을 좁은 공간과 선관위 직원이 아닌 '사전투표관리관'에게 떠넘기는 해명입니다.
중앙선관위나 서울시선관위, 서대문선관위는 왜 투표소를 공간이 좀 더 넓은 곳으로 정하지 않았는지, 왜 CCTV도 설치되지 않은 협소한 공간에 투표소를 설치했는지? 왜 신촌동 사전투표소에서만 투표소 바깥에서 투표용지를 들고 대기하도록 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중앙선관위 김용빈 사무총장이 "기표 대기 줄이 길어진 상황에서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관리 부실이 있었고, 대기 중인 선거인에 대한 통제도 완벽하지 못했다"며 "선관위의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긴 했지만 선관위의 총체적 부실은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주권자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투표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데, 투표를 관장하는 선관위는 투표용지 투표소 밖 반출이라는 사건을 스스로 일으켜 황당한 '부정선거 음모론'의 빌미를 제공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