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를 입은 영덕 노물리 마을. 김대기 기자31일 경북 영덕 바닷가 마을의 시간은 지난 25일에 멈춰 있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청송을 거쳐 25일 오후 5시 54분쯤 영덕으로 삽시간에 번지면서 해안마을까지 덮쳤다.
특히, 바닷가 마을은 집은 물론 어촌계 작업장, 어선, 그물 할 거 없이 모두 불타 주민들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산불 피해는 입은 영덕 경정리 마을 그물 창고. 김대기 기자31일 찾은 영덕읍 노물리 마을은 잿더미 그대로의 모습이다. 마을 진입로에는 불에 폭발한 유리창 파편들이 쏟아져 있었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전소된 집과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린 집, 탄광지역을 방불케 하는 항만시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불 완진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케한 불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낮인데도 지나다니는 주민을 찾아볼 수 없어 유령마을이 따로 없었다. 주민들은 폐허가 된 마을에 머물수 없어 인근에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영덕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 지내고 있는 노물리 주민들. 김대기 기자노물리 주민들은 "마을에 가도 물도 전기도 안들어오고 온통 잿더미 밖에 없으니 뭐하나 할 수가 없다"면서 "방에 누워만 있다. 누워 있으면 눈물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 마을에는 평등호 등 어선 12척이 불에 타고, 어촌계 작업장과 각 가정에 보관하던 그물마저 하루 아침에 재로 변해버려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덕 경정리, 석리 주민들이 그물을 말리는 공간에 건조 중이던 그물이 산불로 녹아내렸다. 김대기 기자노물리 주민 김영수(74)씨는 "10살부터 배를 탄 뒤 평생 일해 배도 사고 집도 일궜는데 한순간에 날아갔다"면서 "농가는 나무가 불에 탔더라도 땅은 그대로 있지 않냐. 어부들은 배, 그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바다만 멍하니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배 건조, 엔진, 기자재, 그물 등 어선 한 척 당 2~3억원이 들어간다"면서 "집 한칸 없이 다 타버린 상황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산불피해를 입은 양식장에 피해 복구 중인 군인. 김대기 기자인근 석리에 자리잡은 우일수산과 동영수산 등 육상양식장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양식장 내 강도다리가 모두 폐사해 불어터진 흰 배만 드러내놓고 있었다. 불이 난지 엿새째인 이날도 군인들과 온 가족이 총동원돼 폐사한 어류를 건져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에 부패한 어류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큼한 냄새가 불냄새와 뒤섞여 연신 재채기가 나왔다.
영덕 석리 동영수산에서 폐사한 강도다리. 김대기 기자동영수산 최용태(85) 대표는 "양식장을 한지 38년이 됐다. 그동안 태풍이니 고수온때 철저히 대비해 사고 한번 없었다"면서 "이번에는 양식장 전체 19만 미가 폐사했다. 사람이 안죽은게 다행이라는 말 밖에 안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수협 재해 보험을 들어놨는데, 산불은 안된다더라"면서 "한줄기 희망마져 꺾인 게 더 힘들다"고 덧붙였다.
경정리1리 산불 피해로 식당과 팬션 등이 불에 탔다. 김대기 기자영덕 대게 원조마을 경정마을도 산불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 마을은 축산항에 인접하고 빼어난 경치에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경정1리 주민 이 모씨는 "마을 입구에 팬션 식당들이 시꺼멓게 탔다. 관광객들이 오고 싶겠냐"면서 "오징어 작업장, 창고 등 모두 잿더미가 됐다. 마을 수익원이 완전히 막힌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