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또 혐중몰이[베이징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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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대나무처럼 유연한 외교로 미중 양국에서 균형잡는 베트남
한국도 수출비중 1, 2위 중국·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 절실
대선주자 나경원 뜬금포 '서울대 내 시진핑 자료실' 폐쇄 주장
박근혜 정부때 추진 사업…박근혜는 중국 샤프 파워 전도사?
위기 모면에 외교관계 끌어들인 윤석열식 혐중몰이와 판박이

14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14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남아 3국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 순방을 마치고 말레이시아로 떠난 지난 15일 중국과 베트남은 '패권주의·일방주의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공개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무역·투자 제한에 주목한다"면서 "패권주의와 힘의 정치, 모든 형태의 일방주의, 그리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공동의 반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중국에 145%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고, 베트남에는 46%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시점에 나온 성명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날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중국과 손잡고 자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미국에 맞서는 '항미연대'에 가입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적정선에서 중국이 원하는 '립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문구는 대체로 과거 성명에서 나온 표현과 비슷한 수준이며, 베트남 측은 이번 시 주석 방문 기간 트럼프 대통령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발언은 피하는 듯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 단속을 벌이는가 하면 민감 품목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할 준비를 하는 등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46%라는 고율 관세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지난해 기준 1235억 달러(약 178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안겨준 미국과 척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와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이 15일(현지시간) 하노이의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와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이 15일(현지시간) 하노이의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주변국이자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의 요구도 일정부문 수용하며 미중 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이같은 베트남의 외교술을 유연성을 강조한 '대나무 외교'라 부른다.

한국 역시 베트남 만큼이나 미중 양국이 모두 중요한 교역국이다. 지난 2024년 기준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은 19.5%, 미국은 18.7%로 나란히 1,2위 수출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로 향후 대중 수출 실적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동시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 품목 상당수가 중간재 형태로 중국으로 건너가 완제품으로 미국에 수출된다는 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로 대중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한국도 트럼프발(發) 무역전쟁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콧대 높던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며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 정부의 행보를 보면 나름대로 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흔적은 보인다. 지난달 30일 한중일 3국 경제통상장관들이 5년여 만에 한자리에 모여 3국 간 경제·통상 협력을 확대하기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눈에 띄는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3국 경제통상장관이 손을 맞잡은 장면은 미국의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브라이언 샤츠 미국 상원의원은 이 장면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밝혔을 정도다.

미국에 보복 관세 부과 등 맞대응에 나서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이 고율 관세 부과를 고집할 경우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보다 확대할 수 있다는 시그널은 추후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하나의 협상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올해 첫 해외순방으로 베트남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올해 첫 해외순방으로 베트남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4일 '미국 관세가 시진핑의 날을 만들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부과된 고율 관세로 인해 한중일 3국의 협력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WSJ는 "일본과 한국에는 반미주의가 여전히 정치적 동력으로 남아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보로 반미정서가 더 커질 것"이라며 "거대한 시장을 지닌 중국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어느때보다 균형외교가 필요한 현 시점에, 12.3 계엄으로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여전히 극렬지지층에 기대 '혐중몰이'에 집착하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있다는게 문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용으로 '중국 간첩'을 언급한 이후 김민전·유상범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 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선다",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한다" 등 혐중정서 확산에 앞장섰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한 이런 주장이 국민의힘 내에서 힘을 잃은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대선주자로 나선 나경원 의원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내 '시진핑 자료실' 폐쇄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나 의원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대 도서관에) 시진핑 자료실만 있다는 건 바로 중국의 샤프 파워(Sharp power·한 국가가 대상 국가의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조작적인 외교정책을 사용하는 것)의 방증"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국익 퍼스트(first), 국민 퍼스트가 돼야 한다"며 "제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이 먼저이고 국익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시진핑 자료실을 없애는 것이 어떻게 국익, 국민과 연결되는지는 도통 이해하기 어렵지만 주요 언론 대부분이 나 의원의 해당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이슈몰이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이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 자료실은 없다는 것을 시진핑 자료실 폐쇄 근거의 하나로 들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자면 시진핑 자료실이 개관한 건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해 박 전 대통령과 정담회담을 가졌고, 서울대에 들러 도서 기증을 약속했다. 이후 1년 뒤 실제 1만권의 중국 관련 도서 기증이 이뤄져 이듬해 10월 자료실이 개관했고, 그동안 중국 연구에 활용됐다.

따라서, 국립 서울대에 개관한 시진핑 자료실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양국간 우호사업이라고 정의하는게 옳다. 그렇다면 나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은 중국 '샤프 파워'의 전도사쯤 된다는 건가?

대선 주자로 나서면서 선택한게 이런 혐중몰이라면 다른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위기 모면을 위해 헌 짚신짝 처럼 내다버린 윤 전 대통령의 수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방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선택을 받기도 힘들어 보인다.

나 의원이 차라리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이후 '한한령'(한류 금지령) 등 구차한 보복에 급급했던 중국과 달리 한국은 시진핑 자료실 폐쇄같은 보복에 나서지 않고 신뢰를 지켰다는 점을 내세우며 한한령 해제를 당당히 요구했으면 어땠을까?

가뜩이나 최근 한국 국적 대중가수가 중국에서 공연무대에 서는 등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혐중몰이 보다 오히려 이런 요구가 나 의원이 말한 국익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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