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포격 3주년' 연평도 둘러보니…곳곳에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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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노인보다 아이들 상처 더 문제…NLL 공방엔 "한심하고 불안"

 

지난 21일, 연평도 당섬 선착장은 하루에 한 번 들어오는 배 시간에 맞춰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와는 달리 배에서 내리자마자 커다란 방송용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들이 선착장 곳곳에 자리를 잡고 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 폭탄 공격을 퍼부은 지 3년째 되는 23일을 앞두고 정부와 언론 등 각계의 관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정전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포격으로 숨지는 등 군과 민간인에서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그 날. 끔찍한 흔적도 이제는 조금씩 연평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1700여 명이 살던 연평도는 포격 직후 모두 인천으로 대피하면서 한때 100여 명까지 인구가 줄었지만, 주민 대부분이 돌아온 데다 주둔한 군대나 각종 공사에 동원된 인부가 터를 잡으면서 현재는 2200여 명이 살고 있다.

화마에 무너졌던 집터마다 반듯한 새집이 들어섰다.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집을 짓는 바람에 똑같이 생긴 집이 몇 채씩 줄지어 서 있기도 했다.

포격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의 임시 거처였던 연평초등학교도 통합운영학교를 짓느라 예전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민들도 분주히 오가는 군인과 기자들이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가을 끝물인 꽃게잡이 철을 놓치지 않으려 그물 손질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천지를 뒤흔들었던 포격 순간만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에 관련 서류를 내러 간다던 최한별(15) 양도 포격을 피해 대피소로 향하던 순간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자세히 설명했다.

최 양은 "학원에서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며 "학원 선생님이 일단 책상 아래로 들어가라고 해서 숨어있었는데, 누군가 대피소로 가야 한다고 해서 다들 밖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아이들은 포격의 경험에 대해 "그 날은 무서웠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최 양도 "대피소로 뛰어가는데 포탄 소리가 계속 들려서 포탄이 나를 쫓아오는 줄 알았다"고 얘기하고는 함께 있던 친구들과 까르르 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을 바라보는 걱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연평도 포격과 같은 충격적인 순간은 성인보다도 어린아이들에게 더 싶은 상처를 남겨놓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포격이 있던 지난 2010년부터 주민들을 상대로 상담치료를 해왔다는 인천시의료원의 안재형 담당자도 내심 아이들을 걱정한다. 지난 6월부터는 전문가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예술치료 프로그램인 '연평도행복캠프'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어른들은 포격 소리에도 더 익숙하고, 생업에 종사하느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면서도 "아이들은 그 순간의 충격이 워낙 강해서 계속 상처로 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어른보다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하지 못해 치료도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가령 연평도에 주둔한 군부대가 포격 훈련을 하면 어른들은 오랜 경험으로 국군 훈련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하지만, 어린아이들일수록 충격적인 경험이던 북한의 포격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잦다는 설명이다.

안 담당자는 "아직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주민들은 수면제에 의지하며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의 충격과 상처가 곳곳에 새겨진 연평도를 떠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생계수단이라고는 어업뿐인데 쉽게 고향을 떠나 뭍으로 나설 수 있겠나.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주민들에게는 최근 NLL대화록을 놓고 연일 벌어지는 정치권 공방 역시 답답할 수밖에 없다.

북한군이 쏜 포탄이 집 천장을 뚫고 안방에 떨어졌다던 정진석(90) 씨는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꼴을 보면 한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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