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원칙'의 朴 대통령 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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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박 대통령의 흔들린 '신뢰와 원칙'

지난해 12월 24일 기초생활수급자 김상배(61)씨의 집을 찾아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후퇴를 바라보며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위기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매니페스토는 선거와 관련해 각 후보들이 유권자와 맺는 일종의 계약이다. 매니페스토에 입각한 공약에는 목표와 이행 가능성, 예산확보의 근거, 기한 명시를 요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약이 후퇴한다는 것은 계약파기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말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로 돌아가보자.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확대해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내년부터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려 합니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TV토론에서 대표적인 복지공약인 기초연금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집권 기간 기초연금 공약이행에 14조 6천여억원이 소요된다고 봤으나, 대선 직후 보건사회연구원이 추계한 자료를 보면 액수는 39조 3천여억원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득 상위 30%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소득 하위 70% 구간에서도 20만원 이내에서 차등지급하는 식으로 공약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전액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공약도 병실료, 간병비, 선택진료비 등 환자의 부담이 큰 부분은 제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개의 대선공약에 소요되는 재원으로 135조원을 잡았다. 여기에 106개의 지역공약에 들어가는 200조원 가량을 합치면 공약이행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증세를 포함한 특단의 재원마련 대책이 수반되더라도 애초부터 이행이 불가능했던 공약이 널려있다.

물론 역대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부도(不渡)수표를 남발한 공약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정이양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혼란과 국익을 앞세워 약속을 파기했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통령에 욕심이 없다고 했으나, 국보위 설치 뒤 실권을 장악하고 19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중간평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중간평가 유보를 선언해 역시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쌀시장 개방 약속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과 내각제를 파기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이후 경제정책과 관련해 우클릭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때는 거창하게 내세운 747공약과 동남권신공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의 공약을 남발했다.

공약 불이행은 대의민주주의의 왜곡을 불러온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과의 약속, 즉 공약을 중심으로 대의가 위임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공약을 무조건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행이 불가능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정책은 기본적으로 재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재원마련 대책을 세우지 않고 내놓은 공약은 심하게 말하면 일종의 사기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표방한 박근혜 대통령은 전통적인 진보 아젠다를 내걸고 당선된 보수진영의 후보였다. 트레이드 마크는 '신뢰와 원칙'이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은 박근혜식 복지, 신뢰와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었는데, 이 두가지가 깨지려는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선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기엔 공약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 중요한 것은 선거때마다 반복되는 것만은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 하는 정치인을 가리켜 일본에선 '두 개의 혀'를 가졌다고 한다.

신뢰의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이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널리 이해를 구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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