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원 PD는 "최강럭비를 잘 봤다며 이수근 선배와 김준현씨에게도 연락이 오더라"며 "냉정한 지인들의 연락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사진은 스크럼 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늘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그래도 궁금하니 시작했다. 최강야구, 도시어부, 강철부대를 거쳐 이번에는 럭비였다.
넷플릭스 예능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를 연출한 장시원 PD는 당시 심경을 떠올렸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처음엔 재미있게 보이다가 생각이 많아지면 두려움이 커져 못 하게 되더라고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 PD는 "뭘 하든지 두려운 건 마찬가지"라며 "야구 가지고 되겠어, 낚시 가지고 되겠어, 군대 가지고 되겠어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특히) 도시어부는 하기도 전에 너무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탓에 집에 가서도 내가 잘 못 생각했나라는 자괴감도 들 정도였다"며 "바다에 나가보지도 않았는데 실패한 사람이 돼 버리더라"고 떠올렸다.
이어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져 안 하게 된다"며 "가급적 첫 감정을 계속 가져가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강조했다.
장 PD는 평소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심심해서다. 심지어 한 번도 낚시를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어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모르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심심하지 않다. 재미있다"며 웃었다. 이어 "그들의 세계를 정확히 조명하는 게 중요하더라"며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고 진심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끌리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금도 없는데 한 경기를 마지막 경기처럼 하더라"
'최강럭비'는 승리의 영광을 위해 온 몸을 던지며 필사의 전진을 이어가는 럭비 선수들의 승부를 보여주는 스포츠 서바이벌 예능이다. 넷플릭스 제공장 PD가 '최강럭비'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일본 여행 중 떠오른 독특한 영감에서 비롯됐다.
그는 "설원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중세 시대 전투가 갑자기 생각났다"며 "숙소에 돌아와 현대에선 어떤 비슷한 종목이 있을 지를 고민하다 보니 럭비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인과관계가 없는 건 저도 안다"고 웃었다.
이후 럭비와 관련된 자료를 찾고 국내 럭비 경기를 관전하며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장 PD는 "럭비를 생전 처음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이 한 경기를 마지막 경기처럼 하더라. 그때 5명이 실려 나갔다"고 떠올렸다.
그는 "돈 때문인가 싶어 상금을 봤는데 상금도 없더라"며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피를 흘리고 선수들이 실려 나가는 게 너무 일상적이더라"며 "진짜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고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전 게임 모습. 넷플릭스 제공장 PD는 럭비에 대한 규칙을 알려주기 위해 사전 게임을 기획했다. 이 때문에 작품 초반 스크럼과, 트라이, 컨버전 킥 미션을 구상했다.
그는 "럭비를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 최소한의 규칙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며 "본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3가지 종목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럭비라고 하면 미식축구라고 아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다"며 "럭비를 인지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짝수팀이 아닌 7팀을 섭외한 이유에 대해선 "수준이 되는 팀을 구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팀도 참가하기에 어느 정도 게임이 돼야 했다"며 "조사해 보니 나머지 대학 팀은 고대, 연대보다 실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밝혔다.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 소름…선수들 진심에 울컥"
장시원 PD는 사전 게임 당시 진행자를 두지 않고 직접 진행한 것에 대해 "대회를 주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기해야 더 진실된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장 PD는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마이크를 특수 제작했다. 선수들은 몸에 맞게 제작된 마이크를 부착해 경기를 뛰었다. 카메라만 해도 140대가 투입됐다.
그는 "선수들도 실제 (마이크를) 차보고 경기하는 데 문제 없다고 말해줬다"며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현장에서 들으면 정말 소름 끼친다"고 전했다.
물론 예상치 못한 과정도 있었다. 특히 사전 게임인 트라이 종목을 진행할 때 규칙을 급하게 수정하기도 했다.
장 PD는 "너무 과격하더라. 사전 게임에서 다쳐서 본 게임을 못하면 안 되니 규칙을 변경하게 됐다"며 "사생결단으로 뛰는 게 럭비지만 부상으로 정작 본 게임에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할 거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본 게임 첫 경기도 설원에서 하려고 준비했다. 강원도 철원과 평창 지역에 답사도 다녀왔다.
장 PD는 "그림은 예뻤다"며 "하지만 너무 위험하고 다칠 거 같았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그는 "예능이긴 하지만 럭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인물을 조금 살렸으면 럭비 자체를 제대로 보여주기가 힘들더라. 선택의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장 PD는 럭비의 매력을 '기세'라고 꼽았다.
"점수 차이가 점점 벌어지게 되면 경기 자체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뛰는 선수들이 잘 알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점수 차가 나더라도 끝까지 싸우더라고요. 팀이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 대 더 때려 박으려고 하니 저도 울컥하게 되더라고요."장 PD는 차기작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그는 "계속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조금 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며 "하기 전에 자기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가지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