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 제작발표회에서 김희원(왼쪽) 감독과 강풀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명가게'는 2023년 '무빙'으로 소위 대박을 터트린 강풀 작가의 두번째 각본작이다. 박종민 기자설득하는 데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희원 감독이 첫 연출작으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를 하게 된 배경에는 강풀 작가의 치밀한(?) 작업이 있었다.
"잘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믿는다고 얘기 드렸던 거 같아요.(웃음)"마침 김 감독도 연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는 단편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었고 장르 또한 공포였다. 강 작가도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그는 "감독님이 제가 쓴 극본을 저보다 더 잘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감독님도 연출 생각이 있지 않느냐 우리 이 작품으로 같이 한번 해보는 게 어떠시냐고 제안했다"고 웃었다.
이어 "저도 신인 작가고, 감독님도 신인 감독이라 굉장히 큰 모험이 될 수 있었다"며 "8부로 구성된 작품이고 호러 장르라는 점에서 연출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선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작품이라 배우들의 연기력을 끌어낼 수 있는 감독이 필요했다"며 "감독님이 '무빙' 촬영할 때 주연뿐 아니라 단역 배우들도 다 챙기시더라.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무엇보다 감독님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했다"며 "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내더라. 그래서 제가 설득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작가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김 감독은 주지훈, 박보영, 김설현, 엄태구, 신은수, 이정은, 김민하, 김선화 등 배우들을 직접 섭외하며 작품 속 인물들에게 특색을 입혔다. 여기에 김 감독은 강 작가 앞에서 직접 1인극을 하며 각본과 연출의 의견을 조율하기도 했다.
강 작가도 "감독님이 배우들을 잘 이끌면서 연출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아서 기쁘다"고 만족했다.
"김영탁? 박정민만 생각…박보영 안 할까봐 걱정도"
'조명가게'에서는 모성애, 이성애, 동성애가 나온다. 강풀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배우 박정민(왼쪽), 박보영.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강 작가의 두 번째 각본 작품인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에 있는 조명가게에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펼쳐지는 내용을 다룬다.
가게를 지키는 사장 정원영(주지훈)과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간호사 권영지(박보영),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김현민(엄태구)을 기다리는 이지영(김설현), 딸 주현주(신은수)에게 전구 심부름을 시키는 정유희(이정은)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윤선해(김민하)와 그 주위를 맴도는 박혜원(김선화)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히 작품 말미에 나온 쿠키영상에서는 무빙 속 재생 능력을 갖춘 체대 입시생 장희수(고윤정)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김영탁(박정민)이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강 작가는 김영탁 역으로 박정민만을 생각했다. 그는 "영탁이라는 인물이 우선 코가 크다. 그리고 딱히 내키지 않아 하는데 막상 하게 되면 되게 열심히 하는 캐릭터"라며 "처음부터 박정민 말고 다른 배우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빙' 촬영 4년 전에 정민씨와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며 "당시에는 무빙이 잘 될 자신이 없어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정민씨가 흔쾌히 하겠다고 말해 주더라. 그땐 만화가가 와서 극본 쓴다고 하는 거였는데 정민씨가 대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우 김설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강 작가는 또 권영지 역을 맡은 박보영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극 중 서사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라서 임팩트 없는 역할이 될 가능성이 컸다"며 "환자들을 설명해 주는 인물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내레이터이자 작품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감독님이 권영지 역으로 박보영씨를 언급했는데 그 얘기 듣고 나서 박보영씨만 계속 생각났다"며 "앞서 간호사 역을 두 차례 맡았기에 안 하실까봐 걱정도 되더라"고 웃었다.
이어 "제가 난청이 있어 목소리에 민감한데 박보영씨 목소리가 되게 잘 들리더라"며 "문어체처럼 느껴지지 않게 작품 전체에 안정감을 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설현(설현)의 연기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강 작가는 "감독님이 설현 배우의 못 보던 면을 봤던 거 같더라"며 "현장에 가서 설현씨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독님이 본 게 맞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기쁜 것 중에 하나는 조명가게가 잘 되고 나서 감독님 칭찬과 설현의 재발견이라는 말이다. 너무 고맙더라"며 "설현씨 보면서 우리가 여태까지 다 비슷한 역할만 줬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감탄했다"고 강조했다.
"패러디하려던 건 아냐, 슬픈 감정으로 다가가길"
강풀 작가는 4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 중환자실 모습을 담은 롱테이크 신을 두고 "김희원 감독님의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고 감탄했다. 사진은 강병진(박정표)과 구조견 맥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강병진(박정표)과 구조견 맥스의 서사도 언급했다. 극 중에서 추위에 떨던 강병진은 아파트 단지에서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라고 외친다.
사실 이 장면은 13년 전 화제가 된 한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영상 속 한 남성이 반복되는 반려견의 짖는 소리에 참다못해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고 외치며 불만을 표출한다. 그런데도 반려견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짖어 당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도 확산됐다. 이에 강 작가도 "알고 썼다"며 웃었다.
그는 "패러디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며 "저는 그때 그 영상을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소리를 지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절박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이유가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사를 있는 그대로 썼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의 목표는 1~3화에 등장했던 무서운 장면이 5~8화에서는 슬픈 감정으로 전달되는 거였다"며 "그 밈도 슬픈 감정으로 다가가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강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원작 웹툰에서의 아쉬웠던 내용을 채웠다. 조명가게를 지키는 정원영에 대한 서사다.
그는 "원작에서는 노인으로 나온다. 만화를 그릴 때도 이 사람의 서사를 풀고 싶었는데 마감에 쫓기다 보니 결국 못했었다"며 "다행히 영상화되면서 채우게 됐다. 제가 할 이야기는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떠올렸다.
"20년 지나도 작품 재밌었으면…'무빙2'는 기획 단계"
강풀 작가의 본명은 강도영이다. 그는 "대학 다닐 때 국방색 옷을 자주 입고 다녔는데 잔디밭에 누워있으면 잘 안 보였다"며 "동기들이 붙여준 별명을 필명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강 작가는 일단 인연을 맺으면 오래 이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는 출판사와의 작업도 한 곳에서만 진행했다. 웹툰 역시 20년 넘게 다음과 계약했다. 강 작가는 "이상하게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계속 가게 되더라"고 웃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와의 관계도 긍정적이다. 그는 "'무빙' '조명가게' 두 작품을 함께하며 좋은 파트너십으로 가고 있다"며 "'조명가게' 같은 불친절한 얘기는 디즈니가 아니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빙'과 '조명가게'가 클래식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강 작가는 "두 작품 모두 특정 장르의 기준이 되길 바라는 야망이 있었다"며 "초능력 소재의 작품이 나오면 무빙보다 재미있는지 없는지, 호러 작품이 나올 때도 조명가게가 기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 모든 작품이 5년,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재미있기를 바라는 게 제 목표"라고 강조했다.
강 작가는 끝으로 '무빙' 시즌2 제작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직 구상만 하는 기획 단계예요. '조명가게'와 '무빙'의 세계관이 연결되는 부분도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 해요"
양성식(배성우) 형사에 대해선 "웹툰 쪽 세계관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고, 등장했기에 앞으로 어떤 형태로 나올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만 양성식과 김영탁이 만나는 장면은 단순히 깜짝쇼를 하려고 내보낸 건 아니다. 좀 더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미를 장식한 '조명가게'는 공개 후 12일간 지난해 디즈니+에서 선보인 한국 시리즈 콘텐츠 중 최다 시청 기록을 거뒀다. 이는 디즈니+ 론칭 이후 공개된 한국 작품 중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