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12일부터 막이 올랐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 류영주·박종민·윤창원 기자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에게 허용되는 발언의 범위를 둘러싸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특히 '후보자 비하'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두고 "사실 적시도 안되느냐", "무엇이 비방이냐" 등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정말 사실을 말해도 후보자 비방이면 처벌될까.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일반 유권자도 다음달 2일까지 전화·인터넷·SNS 등을 통해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등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후보자를 비방할 경우 처벌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4일 오후 경남 거제시 고현로에 마련된 유세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거제=류영주 기자허위사실 유포는 당연히 금지되는 행위지만, 논란의 핵심은 공직선거법 제251조다. 이 조항은 사실을 말했더라도 '비방'으로 판단되면 처벌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251조(후보자비방죄)는 "후보자나 그의 가족에 관해 사실을 적시해 비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단,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예외다.
이처럼 '허위'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공익'에 해당하는지를 기준으로 처벌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진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해석이 자의적이라 불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사법부 수호 및 민주당 규탄대회에 참석한 후 퇴장하며 선거운동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실제로 일부 판례에서는 사실을 말했더라도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 공격'의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해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예컨대 상대 후보의 폭행 전과에 대해 "이유없이 폭행을 해놓고도 자신의 행동을 미화해 거짓말만 하는 상습범"이라 발언한 사건에서 법원은 "발언 내용의 전체적인 취지가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공격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면서 유죄를 인정했다.(대법원 1998도1992 판결)
또, 선거 유세 중 후보자의 이혼 과정에 대해 "입이 부끄러워서 얘기하지 않겠다"고 부정적으로 암시하면서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표현한 경우도 처벌됐다. 법원은 "구체적인 이혼 경위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이혼에 이른 과정을 그릇되게 추단하도록 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다"면서 후보자비방죄를 인정했다.(대법원 2000도4595)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선대위원장들과 두 팔을 들어올리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하지만 모든 비방적 사실 공표가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주원의 김진욱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에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 등을 이유로 후보자비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고, 특히 대통령 선거처럼 분야 자체가 공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 공공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례로, 상대 후보가 무자격으로 한의원을 운영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신문기사를 인용해 낭독한 경우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해당 전과는 후보자의 공직 적합성을 가늠하는 판단자료로써, 과장이나 왜곡 없이 전달됐기에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진실한 발언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대법원 1996도977)
또 상대 후보 가족의 세금 체납 사실을 다소 과장해 발언한 사례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배우자의 체납 사실은 후보자의 자질과 공직적격성을 판단하는 데 자료가 될 수 있다"며 "설사 비방의 의도와 사적 이익을 위한 동기가 일부 있더라도, 공익 목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99도4260)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담장에 제21대 대통령선거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선거벽보는 이날부터 전국 8만2900여 곳에 첩부된다. 류영주 기자종합하면 법원은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라 하더라도 △사실에 기반하고 △공익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고 있다.
김 변호사는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한 경우 후보자비방죄 구성요건이 되지만, 발언 내용이 사실이거나 상당 부분 사실에 부합하고 유권자 판단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면 공익성이 인정돼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특히 후보의 사생활에 대해 비방한 경우, 해당 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소명하기 어려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로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글 작성시 어떤 점에서 공익과 관련 있는지 미리 밝혀 훗날 위법성 조각 사유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공익성 판단에는 자연스레 법관의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어 어떤 특정한 방식이 반드시 안전하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