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정부도 인정한 저성장 국면, 해법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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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고용부터 수출까지…사상 최악의 경제 성적표 날아든 지난 한 주
0%대 성장 전망 속, 새 정부 들어서도 막대한 재정 적자, 치솟은 주택 가격에 진퇴양난
"새 정부 경기 침체 대응, 자칫 집값 상승만 부추길 수도" 우려 나와
"새 정부의 재정 정책이 부동산으로 흘러가지 않고 경제 구조 개선되도록 할 수 있냐가 관건"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한국 경제가 대내외를 가릴 것 없이 위기 속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미국 상호관세 조치가 90일 유예된 상태여서, 향후 미국과의 통상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 곳간은 바닥을 보인 지 오래여서, 대선 이후 새 정부가 경기 회복에 나설 여력조차 부족할까 우려된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는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니거니와, 국내외를 가리지도 않고 터져나오고 있다. 당장 지난 1주일만 되돌아봐도 한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진단은 끊이지 않고 반복됐다.

기획재정부는 '5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고용 애로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외여건 악화로 수출 둔화 등 경기 하방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침체된 내수가 회복되지 않아 고용이 위축되고, 다시 소비할 여력이 없어 내수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런데 이를 타개해야 할 수출조차 미국이 세운 관세 장벽 이후 전세계적 경기 위축 등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KDI는 'KDI 경제동향 5월호'에서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경기가 나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지표로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처음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미 한국 경제 곳곳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전기대비 0.246% 하락해, 4분기 연속 감소 중이다. 한국 경제가 4분기 연속 감소한 일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
가장 큰 원인으로는 침체된 내수가 꼽히는데, 민간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1분기 동안 전분기보다 겨우 0.7% 증가한 데 그쳤다. 그나마 무려 11분기나 계속된 감소세를 끊어낸 것이라 다행이라 할 수준이다.

위축된 경기는 고용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9만 4천 명 늘어 4개월째 10만 명대 증가폭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건설업은 1년째 감소 중이고, 10개월 연속 감소한 제조업은 12만 4천 명이나 줄어 6년 2개월 만에 가장 감소폭이 컸다.

특히 비교적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인 고용보험 가입자도 18만 4천 명 증가한 데 그쳐 5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업 가입자 수는 21개월 연속 감소 중인데, 올해 들어서는 줄곧 2만 명 넘게 곤두박질 치고 있다.

그간 한국 경제의 동앗줄이 됐던 부문이 수출 상황도 좋지 않다. AI(인공지능)으로 수요가 폭증했던 반도체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간데다 기름값이 떨어져 석유화학업계가 부진하면서 올해 1분기 수출은 6분기 만에 뒷걸음질쳤다.

그나마 지난달 수출은 3.7% 증가했지만, 이달 초 첫 열흘 동안에는 23.8%나 떨어졌다. 5월 초 연휴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라지만, 일평균 수출로 따져도 1.0% 감소한 결과다.

이런 가운데 KDI는 올해 올해 상반기 경제전망에서는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해 정부·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0%대 성장을 예상했다. 이는 KDI가 지난 2월 전망에서 0.6%p나 하향한 결과로, 전년 11월 2.0%를 예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반년도 되지 않아 1.2%p나 전망이 추락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가 계속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계산한 예측이다. KDI는 만약 유예기간이 종료된 후 이른바 '7월 패키지' 협상에서 관세 인상 등 한국에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0%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은 KDI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최근 현대경제연구원(0.7%), JP모건(0.5%), 씨티(0.6%) 등 민간에서는 0%대 전망이 반복해서 제기됐다.

문제는 이러한 잿빛 전망이 단순히 미국의 관세 충격에 따른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내년의 한국 잠재GDP 성장률(잠재성장률)을 1.98%로 전망했는데, 이는 올해(2.02%)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잠재GDP는 한 국가가 생산요소를 총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걱정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 수준으로, 안정적인 중장기 성장수준이다. 즉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자체가 향후 2%대 성장이 힘겨울 정도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대내외적 악재 속에 12.3 내란 사태 이후 경제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나침반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다음 달 대선으로 새 정부가 꾸려지면 본격적인 경기 대응에 나서면서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작 새 정부가 경기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1분기 기준 61조 3천억 원이나 적자를 기록해 역대 두 번째로 적자폭이 컸다. 윤석열 정부 시절 '묻지마 감세'로 일관한 바람에 3년 내내 적자가 반복된데다, 심지어 2년째 이어진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87조 2천억 원이나 세금을 덜 걷으면서 지난해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후폭풍이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새 정부로서는 만신창이가 된 한국 경제를 빈털터리 정부로 일으켜세워야 하는 진퇴양난의 위기부터 수습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부터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어차피 단기적으로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정부가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며 "재정이든 통화든 정부가 무리해서 돈을 풀면 물가와 집값만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리도 0.5%p 가량 인하할 여지가 남았지만, 경기 부양에 큰 효과는 없고 주 택 가격만 오를 수 있다"며 "당장 경기 상황보다 중장기적인 경제 구조 개혁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이필상 특임교수도 "산업이 무너지면서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는 상태여서, 경기 부양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AI 등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며 "추경을 편성해 경기 부양책을 쓸 수 있을텐데, 먼저 개혁 조치를 동해 동력을 찾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김용기 교수는 "정부의 재정 여력이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경기침체를 생각해볼 때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한국은행도 금리를 2.5% 아래로 낮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라며 "2017~2019년 가계부채에 대한 양적 관리정책을 포기함에 따라 팬데믹 기간 중 폭발적으로 증가한 유동성이 비생산적인 자산소유권 이전에 집중됨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상황이 다시 야기될 것이고, 정부 역량에 대한 불신은 팽배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새 정부가 확장적인 재정·통화정책을 펼치면서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며 "가령 현재 가계 주담보대출에 적용되고 있는 낮은 규제 부담을 가계부문 경기대응 완충자본의 도입 등을 통해 자금이 비생산적인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에 사용되는 것을 막고, 생산적으로 기업금융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등이 새 정부 초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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