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사진=기린그림 제공)
'바람의 건축가'로 불리는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재일교포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한국성을 추구했던 그는 디아스포라 건축가였다.
이타미 준은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마음으로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집을 짓고, 건축물의 특성에 사람들의 시간과 삶을 담는 공간을 담아냈다. 바람의 움직임이나 돌과 물, 흙 등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살리고 빛이 들어오는 부분과 그늘을 위한 여백까지 담아낸 건축물의 조화로움에는 그의 철학이 온전하게 담겨있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감독 정다운, 프로듀서 김종신)는 그가 빚은 건축물과 걸어온 삶을 섬세하게 살핀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이방인에서 세계에 울림을 전한 건축가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톺아보며, 건축이라는 소재로 근원적인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그가 남긴 따뜻한 공간을 전달한다.
영화는 이타미 준의 일생을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집은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이타미 준의 가치관을 오롯이 전달하는 데 힘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길 염원하며 지은 그의 집과 건축물은 따뜻함과 조화로움을 남기며 관객들에 잔잔한 위로로 다가간다.
이타미 준은 재일교포인 탓에 일본에서 오랫동안 수모를 겪었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품고 살아간 이타미 준은 가슴 속에서 한국을 버리지 않아 일본에서의 활동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의 예명인 '이타미 준' 역시 이곳에서 파생됐다. 한국 이름인 유동룡을 고집하며 살아오다가 건축가로서 활동이 어려워진 그는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과 한국을 올 때 이용했던 이타미 공항을 합쳐 이름을 지었다. 이는 경계인으로서의 차별을 넘어 세계를 뛰어넘으리라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포부가 함축돼 있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컷
조국인 한국에서도 경계인으로서의 차별은 존재했다.
그가 1982년도에 지은 온양미술관은 충청도의 낮은 돌담과 미음 자형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지역 황토를 이용해 만든 벽돌로 지은 공간이다. 특히 아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이순신의 거북선 모양을 본떠 지붕을 덮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의 '미'가 아닌 일본의 '선'으로 오해를 받으며 왜색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영화는 이러한 논란도 덤덤하게 풀어낸다.
영화는 특히 이타미 준의 역작이 몰려있는 제주도에 주목한다. 정다운 감독은 "제주도가 이타미 준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의 시미즈하고 많이 닮았기도 하고, 제주도에는 이타미 준의 마스터피스이자 정수가 남아있다"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에는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 미술관' 등 자연에 조화롭게 감응하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이 고고하게 들어서 있다.
특히 '수·풍·석 미술관' 같은 경우는 단순 건축물이 아닌 자연 속 '오브제' 그 자체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을 벗 삼아 치유와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이타미 준은 자신의 고향과 닮은 제주도에서 생을 마치고 싶어 했지만, 2011년 도쿄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일본과 한국, 두 개의 고향을 가진 이타미 준의 경계로서의 삶을 바다로 표현한다.
또 바다 건너 한국에 그의 건축물이 아직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따뜻한 공간을 전하고 싶었던 이타미 준의 치유와 위로의 감정을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온전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 (사진=기린그림 제공)
15일 개봉, 상영시간 112분,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