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의사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웬일?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8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사무실을 찾아 "의정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사태가 장기화한 데 대해 의료계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과 시점이 공교롭다. 하필 전공의들이 복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한 조건으로 복귀하려다 보니 환자들 앞에서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내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1년 5개월 동안 안중에 없던 국민들의 불편이 갑자기 보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이같은 생각에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같은 날 낸 성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당한 정책에 항의해 온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또다시 사과를 요구하거나 서약서를 작성하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라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사과를 하겠다는데 교수들은 사과하지 말라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국민들은 의사선생님들의 진심을 알 수 없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모습. 류영주 기자교육부는 한 술 더 떴다. 수업 거부 의대생들의 복귀를 앞두고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특혜 얘기보다는 아이들(학생들)의 상처를 보듬고 어떻게 교육을 잘 할 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학사 유연화'는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이제는 아이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저 자상함이라니. 때 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아이들을 만들자는 교육 방침인가.
밑도 끝도 없이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자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분노가 의정갈등의 배경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일부이지만 이 '아이들'과 선배 의사들이 의정갈등에서 보여준 발언은 직업윤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라거나 "조선인이 응급실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음",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마비되고, 의사에게 진료받지 못해서 생을 마감할 뻔한 경험들이 여럿 쌓이고 쌓여야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 등등.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의사가 될까. 끔찍하다.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가 "미래 환자의 안전과 국민 건강을 위한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환자는?
박종민 기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병원 수용 지연 시간 통계' 자료를 보자. 구급대원이 환자를 데리고 현장에서 출발해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이송시간이 2시간을 초과한 사례가 지난해 6232건으로 전년 3233건 대비 1.9배 늘었다. 하루 평균 17명인 셈이다. 올해는 6월 기준 3877건으로 지난해 건수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의사선생님들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현재 환자들을 외면한 채 미래 환자를 운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의사불패' 서사가 마무리되려 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2020년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을 추진하자 대한의사협회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에게 진단을 받겠냐고 국민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이재명정부는 대통령 선거 공약에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로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확보"를 명시했다. 이를 위해 "지역의사·지역의대·공공의료사관학교 신설" 등을 약속했다. 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