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15분뒤 무조건 진압' 강경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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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 흐름에 경찰도 '충성 경쟁'" 비판…주말 도심집회 충돌 우려

불법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기조가 기존의 ‘채증을 통한 사후 사법처리’에서 ‘15분 만에 즉시 현장처리’로 한층 강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공안 분위기에 편승해 ‘충성 경쟁’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9일부터 이틀간 예정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경찰의 4월과 11월 보도자료를 비교하면 '채증'이 빠진 자리를 '물포 등 경찰 장비를 사용해 불법 상태를 해소'하겠다는 엄포가 채웠다.

 

◈ 경찰, 집회 대응기조 ‘채증’에서 ‘불법 상태 해소’로 강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는 8일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관련, 준법 개최 당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주말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예고돼 있어 교통정체가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신고된 집회ㆍ행진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장하되’라는 표제 아래 “묵과할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물포ㆍ캡사이신’ 등 경찰 장비를 사용하여 불법 상태를 해소”라고 적힌 부분이다. 사실상의 ‘엄포’였다.

그런데 경찰이 제123주년 노동절 관련 집회를 앞두고 지난 4월 29일 낸 보도자료와 비교하면 불법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당시 경찰은 ‘신고된 집회ㆍ행진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장’이라는 똑같은 표제 아래 “신고 내용 일탈, 질서 유지선 침범ㆍ손괴, 주최자 준수사항 위반 등에 대해서는 철저한 채증으로 엄히 사법조치”하겠다고 밝혔다.

6개월 만에 ‘채증’이 빠지고, 대신 그 자리를 ‘불법 상태 해소’가 채웠다.

이와 관련해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주말 집회에서 불법 행위가 15분을 넘기면 바로 해산과 검거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과거에는 위법 행위자들을 채증해서 사후에 소환했는데 이제는 현장에서 바로 처리하라고 윗선에서 지시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불법 집회에 대한 대응기조를 기존의 ‘채증을 통한 사후 사법처리’에서 ‘현장에서 15분 만에 즉시 불법 해소’로 강화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비롯한 당원들이 정당 해산기도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이 농성에 사용할 천막 구조물 반입을 불허하자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 ‘해산심판’ 통합진보당 집회에도 잇따라 강경대응

아울러 이성한 경찰청장은 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된 통합진보당 측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위용 천막 3개를 설치한 데 대해 이를 막지 못한 현장 경찰관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5일 진보당 측이 최초로 천막 설치를 시도했을 때에는 4명을 연행하는 충돌을 감행하며 천막이 세워지는 것을 끝내 막아낸 바 있다.

더구나 이 청장은 서울시청과 협의해 최대한 빨리 천막을 걷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해당된다. 천막 설치는 경찰이 이를 제지할 수 있는 행정법상 ‘즉시강제’ 요건에 맞지 않고, 이미 천막이 세워진 뒤에는 지방자치단체만이 무단 점유를 문제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00일을 맞은 민주당의 서울광장 천막도 무단 점거에 따른 광장 점유료 1100여만원을 부과받았을 뿐이다.

진보당을 겨냥한 경찰의 강경 대응은 8일 서울 청운동사무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된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 기동대 7개 중대를 동원,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진보당 소속 공직자 100여명의 행진을 원천 봉쇄했다. 시위대를 최소 4배이상 압도하는 규모다.

제68주년 광복절을 맞은 15일 오후 서울 을지로입구 네거리에서 경찰인 쏜 최루액을 맞은 한 진보단체 회원이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다.(윤성호 기자cybercoc1@cbs.co.kr)

 

◈ “정권 차원의 ‘공안정국’ 흐름 속에 경찰도 ‘충성 경쟁’…우려스럽다” 비판

이처럼 최근 들어 경찰의 대응기조가 한층 강화된 것은 정권 차원의 ‘新(신) 공안정국’ 흐름에 경찰도 적극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궁지에 몰린 정권이 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경찰도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셈이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전반적으로 공안적 분위기로 가니까 경찰이 이에 편승해서 ‘충성 경쟁’에 나선 꼴”이라고 일갈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집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경찰이 강경 대응ㆍ선제 대응을 선포하는 건 전체적으로 의사표현이나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켜서 정상적인 소통과 토론 자체를 마비시키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셈”이라며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이번 정권 출범 이후 ‘법질서 확립’ 원칙에 따라 합법집회는 보장하되, 불법 폭력에는 엄정 대응하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주말에 예고된 노동계의 대규모 시위이다. 민주노총은 9일과 10일 서울 도심에서 각각 2만명과 5만명이 모이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특히 통일로와 을지로, 청계천로에서의 행진이 예정돼 있어 경찰이 공언한 대로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 8월에도 국정원 규탄 시위대의 도심 행진을 물대포로 진압하며 300여명을 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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