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올해 총선 구로을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 대해 최초 제기된 의혹에 더해 수수한 액수와 관련자를 추가로 파악해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태 의원은 기초의원들로부터 '공천에 대한 대가'(공직선거법 위반) 성격의 이른바 '쪼개기 후원'(정치자금법 위반)을 받았다는 혐의로 공수처 수사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서울 구로을 후보로 태 의원을 단수 추천했다. 반면 김현아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기 고양정 후보로 단수 추천됐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공천이 철회된 바 있다.
두 사안 모두 '공천 헌금 의혹' 등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라는 것과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으로 유사한데도 공천 평가 과정에서 다르게 적용되면서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 압수수색·참고인 조사 진행…수사 도중 액수·관련자 추가
연합뉴스27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5월부터 태 의원 관련 혐의를 수사 중이던 공수처는 압수물 분석 및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최초 제기된 의혹보다 금액이 더 늘고 관련자도 더 있다고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지난해 5월 태 의원이 지난 지방선거를 전후로 본인 지역구(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기초의원들로부터 공천 대가성이 의심되는 정치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태 의원이 후원금을 보낸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나눠서 보냈다", "OOO, OOO, OOO, OOO으로 우선 보냈다"고 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등 '쪼개기 후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보도가 이어지자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태 의원을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고, 공수처는 지난해 6월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는 압수물 분석과 함께 태 의원실의 회계책임자, 보좌진, 돈을 후원한 기초의원들과 명의에 사용된 가족·지인 등을 소환해 수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금액과 관련자가 추가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공수처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가족·지인 명의로 '쪼개기' 의혹도…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태 의원이 정치 후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지인·가족 명의가 동원되는 등 이른바 '쪼개기 수법'이 동원됐다.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한 명에게 연간 300만원을 초과해 후원한 이들은 실명이 공개되기 때문에 이를 피해 은밀하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을 때 가족·지인 등 명의로 나눠서 1인당 후원 액수를 300만원 이하로 맞추는 불법이 자행되곤 한다.
더군다나 타인 명의로 보낸 돈까지 합하면 개인이 한 국회의원에게 연간 후원할 수 있는 액수 상한선인 500만원을 초과한 경우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본인·가족 명의로 총 600만원을 후원한 서울시의원 A씨 △본인·지인 명의로 총 480만원을 후원한 강남구의원 B씨 △본인·가족(4명) 명의로 270만원을 후원한 강남구의원 C씨 △지인 명의로만 300만원을 후원한 서울시의원 D씨 △본인 명의로 200만원을 후원했다가 환불받고 공천 명단이 확정된 직후 다시 200만원을 후원한 강남구의원 E씨 등이다.
정치자금법상 후원인 개인이 한 국회의원에게 연간 후원할 수 있는 액수는 총 500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또 타인의 명의나 가명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한 경우에도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후원금을 낸 기초의원들은 모두 태 의원 지역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기초의원 공천권은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있지만, 해당 지역 당협위원장 의견을 주로 반영된다. 당시 당협위원장인 태 의원이 공천을 미끼로 금품을 받았다는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평소 태 의원에게 후원을 안 하다가 지방선거 당선 이후 집중적으로 후원을 한 경우도 있었다.
공천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공직선거법은 제47조(정당의 후보자추천) 2항에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별도로 '제47조의 2(정당의 후보자추천 관련 금품수수금지) 조항을 통해 금품을 받고 후보자를 공천하는 경우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다만 태 의원 측은 "시·구의원들의 후원은 '쪼개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시·구의원들도 언론에 자발적으로 후원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입장이다. 공수처에도 유사한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사법리스크, 태영호 되고 김현아 안된다?…이중 잣대 논란
국민의힘 김현아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제는 태 의원은 국민의힘 서울 구로을 후보로 단수 추천을 받았지만, 유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현아 전 의원은 경기 고양정에 단수 추천됐다가 전면 철회됐다는 점이다.
김 전 의원은 지역구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당원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 소속 시의원에게 공천을 미끼로 현금을 거두는 등 '공천 헌금'을 받은 혐의도 받는다.
앞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1일 김 전 의원을 경기 고양정 단수 후보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소명이 된 것인가'란 질문에 이철규 공관위원은 "1년 반 전부터 당내 문제로 민원이 제보돼 조사를 했다. 문제될만한 특별한 사안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22일 비대위에서 김 전 의원에 대해 재논의를 요구하면서 후보 철회가 이뤄졌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검찰 수사 중인 것으로 아는데 사법적 판단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공관위에서 이 건에 대해 해당 후보자의 소명과 검토를 더 해 달라는 재논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검사, 법무부장관 출신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비공개 회의에서 김 전 의원 건과 관련해 "경선이 아닌 단수 추천의 경우 우리 스스로 분명해야 하고 자신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사한 혐의로 검찰과 공수처로부터 각각 수사를 받고 있는데 누구는 단수 공천을, 누구는 철회 결정이 난 것을 두고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공관위 관계자는 "경쟁 후보에게서 이의 제기가 없었고, 수사 중인 사안이라 범죄 경력 등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라며 "추가로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공관위는 경기 고양정 공천 방식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