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오디오쇼에 LP가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코로나 이후 급성장세를 보인 음반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염화비닐로 제작하는 LP 판매량이 미국에서 35년 만에 컴팩트디스크(CD)를 제쳤다. 영미권에서는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Z)의 뉴트로 감성이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레코드산업협회(RIAA)가 발간한 2022년 음악산업 수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100만 장의 LP가 미국에서 판매됐지만 CD는 3300만 장만 팔렸다.
RIAA는 실제 실물(피지컬) 앨범의 시장 규모는 17억 달러로 전년대비 4%는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중 LP는 전년대비 17% 증가한 12억 달러로 실물 앨범 시장의 71%를 차지했다.
이미 미국 음악시장의 84%를 스트리밍이 점유하고 있지만 CD, LP등 실물 앨범 규모는 한 해 8천만 장(11%)에 육박한다. 아날로그 저장매체인 LP는 1982년 디지털 저장매체인 CD가 등장하며 음악시장에서 급격하게 감소했다.
영미권에서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의 급격한 성장세 속에 코로나 여파로 각종 공연과 음악활동이 위축되면서 가정에서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보편화되고 이는 CD와 LP 판매량의 증가세를 가져왔다고 봤다.
영국 가디언은 코로나 1년차인 2020년 앨범 구매로 대리만족이 컸다고 분석했다. LP는 여전히 소장용에 가까웠지만 코로나 2년차인 2021년에는 LP 수요가 늘면서 빌보드 차트에 오른 인기 뮤지션들까지 앞다퉈 LP 앨범을 발매했다. 폭스뉴스는 미국의 LP 공장들이 쉼 없이 가동을 해도 감당이 안될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레코드가게. EPA 연합뉴스이를 두고 유행에 민감한 MZ 세대들이 코로나 영향으로 유튜브에 몰입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를 간접 경험하고 이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되는 '뉴트로'(New+Retro)의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써클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영미권 언론에서는 특이한 현상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복고적 감성으로 옛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분석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2021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며 "2020년 서서히 시작해 2021년 LP와 CD 판매량이 동시에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다 2022년에는 CD 판매량이 감소하고 LP는 계속 성장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LP 시장을 인디록이 견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팝 디바 테일러 스위프트와 래퍼 카니예 웨스트 등이 LP 앨범을 발매하는 등 빌보드 톱 뮤지션들의 LP 발매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뮤지션들도 최근 한정판 성격의 LP 앨범을 함께 발매하고 있다. 스텔라장, 나얼, 백예린의 첫 정규 앨범을 담은 LP는 출시 당일 완판됐다. 나얼은 지난해 LP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듀스 30주년을 맞아 이현도가 LP 제작을 추진하고 김현철은 오는 6월 신곡 미니 앨범을 LP로 발매할 예정이다.
기성 가수들 뿐이 아니다. BTS는 정규 4집 앨범을 LP로 낸 데 이어 2020년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기념해 LP와 카세트테이프 한정판을 제작해 예약 판매분이 전량 매진됐다. 태연, 아이유도 한정판 LP와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한 바 있다.
도서·음반 판매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 증가율은 13.8%. 2020년(116.7%)과 2021년(47.3%)에 이어 3년 연속 상승했다. 구매자 연령별 비율은 10대(0.9%) 20대(16.5%) 30대(19.8%) 40대(35%) 50대(21.2%) 60대 이상(6.6%) 순이었다. 이중 30대 이하의 MZ세대 비율은 37.2%에 달했다.
정확한 집계량을 공개하지 않아 업체의 판매량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예스24의 지난해 LP 판매량 순위를 살펴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가요·OST 앨범이었다.
스마트뉴스팀BTS와 뉴진스, 팝송 등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회사원 박현우(31)씨는 지인들과 종종 LP 앨범을 구입한다. 스트리밍이나 유튜브를 통해 원하는 노래를 언제든 들을 수 있지만 소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해외 유명한 뮤지션들의 앨범도 몇 장 소유하고 있다. 집안의 장식장 한 곳을 채우고 있다.
박씨는 "LP의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좋다. 처음에는 '팬심'에서 구매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LP판을 보면 되게 신기해 한다. 오래된 보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방 한구석을 멋지게 꾸며놓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끼리 선물하기도 한다"며 "서로몇몇 한정판 LP판의 경우 중고거래가격이 판매가의 10배 이상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띰했다.
LP와 카세트테이프에 익숙지 않은 MZ 세대들에게는 문화를 소비하는 새로운 한정판 기념품, 굿즈이자 자신을 꾸미는 소장품인 셈이다. 최근 IT 시장과 패션 시장에서도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신지는 않지만 장식장을 가득 메운 한정판 나이키 시리즈를 모으는 이들도 작지 않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LP 시장은 별도 공식 집계를 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매우 작다. 턴테이블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일종의 한정판 굿즈이자 주요 소비층에게는 추억의 장식용품으로서 소비되는 경향이 아직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에서 소비되는 LP는 일부 팬덤도 있지만, 오피스나 가게, 집 안에 컬렉션으로 꾸미는 수요가 대부분"이며 "국내 피지컬 앨범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D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데 LP가 소장 가치 이상 꾸준하게 성장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