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시민사회 내부를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법질서의 퇴행'이라는 우려가 가장 컸다.
◈ '종북몰이'로 민주주의 기본질서 훼손, 사상 다양성 보장하는 헌법정신에도 위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선고일을 하루 앞둔 18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통합진보당 의원(좌측부터 김재연, 이상규, 김미희)들이 '정당 강제해산 저지 민주수호' 의원단 농성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은 특정 정권이나 정부가 쉽게 정당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정당의 해산절차에 많은 제약을 장치해 놨는데, 이는 대의정치의 기초인 정당이 그만큼 민주정치의 존재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의 경우 보수정권 특유의 '종북몰이'로 이같은 안전장치들이 모두 무력화됐다는 주장이다.
이장희 외국어대학교 법대 교수는 "현 정권이 종북몰이 바람을 일으켜 계속 정당 해산쪽으로 몰고 간 결과다.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되게 만들 것이다"고 비판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같이 '민주적 사상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기본적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법대 교수는 헌재 결정에 대해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주의라는 정치이념은 존재할 수 없다'고 헌재가 선언한 것이다"고 단언했다.
다수파의 폭거로부터 소수를 보호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오동석 아주대 법대교수는 "다수파에 의해 소수 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게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이 세계적인 기준인데, 제도적 취지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자격 헌재가 뺏을 수 있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선고기일인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통합진보당 해산과 더불어 소속 의원 5명 전원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것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지역구 의원의 경우 의원직은 무소속으로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합당하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서 비례대표들의 의원직 상실도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유권자가 1인 2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비례대표도 유권자의 선택이라 봐야 한다. 헌재에서 법적 근거 없이 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비판했다.
◈ 민변, 참여연대 '민주적 기본질서 부정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닌 헌재와 정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을 결정한 19일 오전 선고공판을 마친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을 나선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참여연대는 헌재 결정이 나온 데 대해 성명을 내고 "민주적 기본질서 부정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닌 헌재와 정부"라고 비판했다.
또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와 권위주의 세력에 맞섰던 국민들의 지난한 저항을 통해 그나마 발전해왔지만 이제 헌법재판소와 정부가 이를 부정해버렸다"고 규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도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을 '사법살인'이라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민변은 통합진보당 해산을 "재심 무죄로 확정된 진보당사건이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과 같이 정치권력에 의한, 정치권력에 편승한 헌법재판소의 정략적 결정이다"고 비난했다.
특히 이번 결정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닥쳐올 '매카시즘' 열풍과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 학계 일부 '의미 있는 결정' 긍정적 평가도학계 내에서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헌법에는 정당의 목적뿐만 아니라 정당의 활동이 민주주의 기본이념에 위배 되도 정당을 해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석기 의원 등의 반국가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 내부의 이념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헌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리해 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신평 경북대 법대 교수는 "정당활동은 중앙조직뿐만 아니라 하부조직도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에 이석기 전 의원이 주도로 행한 행위는 바로 정당의 활동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