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로 한일협력 포기는 사치"[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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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았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진보와 후퇴를 거듭하는 한일 관계의 쳇바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에 서명하면서 협력과 화합의 길을 열었지만, 잊을 만하면 덧나고 마는 과거사의 상처는 양국관계의 진전을 어렵게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합의점 찾기에 골몰했지만 계엄 선포로 탄핵되면서 모든 논의는 올스톱된 지 수개월째다.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탄생으로 한일간 안보 및 경제 협력뿐 아니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 관계를 진단하고 향후 우리나라의 대일 외교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획④]

신각수 전 주일대사. 제주포럼 사무국 제공신각수 전 주일대사. 제주포럼 사무국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때론 멀게 때론 가깝게…진퇴 반복해온 韓日
②갈등 남은 尹정부 '제3자 대위변제안'…첫 고비 되나
③트럼프앞 한일 '동병상련'…새 안보·경제협력 청사진은?
④"과거사 문제로 한일협력 포기는 사치"[인터뷰]
⑤수교 60년 맞은 한일 '훈풍 전환' 계기될까

"일본이 예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일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對)아시아 정책을 전개할 때 귀를 여는 건 일본부터니까요."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일관계 관리의 이유에 대해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짚었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아시아 정책을 펼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건 아직 한국보다 일본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한일관계가 튼튼할 때 한미동맹도 더 관리하기 쉽고 한중관계도 개선된다는 게 신 전 대사의 지론이다.
 
한일수교 60주년의 의미와 새 정부의 한일관계 방향성을 듣기 위해 신 전 대사를 만났다. 그는 2008~2011년 외교부 2차관과 1차관을 각각 역임했고 2011~2013년 주일대사를 지낸 40년 경력의 외교 베테랑이다. 신 전 대사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이뤄졌다.
 

"정부 수립 후 가장 어려운 안보지형…日과 협력 필수"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 전 대사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는 안보상황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어려운 지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말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이 중국 견제와 대만문제로 초점이 맞춰진 상태에서 일본은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쟁구역(전구)으로 통합하자는 '원시어터(One Theater)'를 제안하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로 미군철수 등 후퇴가 우려되자 대응해 일본이 미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묶어두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중국을 둘러싼 갈등에 주한미군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돼 북한 억지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신 전 대사는 "미국은 '한반도 안보는 알아서 하라' 하고, 일본은 '원시어터로 묶어서 같이 하자'고 먼저 나서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은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할 수 있겠나.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주한미군 4500명 철수설와 대만 유사시 개입을 언젠간 맞이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대비할 현실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일본과의 안보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고민해야할 건 주한미군이 대만 유사시에 개입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중국을 상대로 적대시할 수는 없으니까 '익스큐즈(양해)'를 잘 만들어야 돼요. 정말 어려운 거예요."
 

"中압도적 파워에 韓日이 균형 맞추는 게 국제정치 기본"

미국의 관세전쟁에 한일의 공존은 불가능하지만 협력은 가능하다고 봤다. 양국 모두 대미 흑자가 비슷하고 미국 시장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과 미국의 협상을 참고하고 정보교환을 통해 대책 수립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우리는 흑자의 내용은 달라요. 일본은 주로 자동차지만 우리는 반도체나 통신기기가 일본보다 규모가 커요. 직접 협력은 불가능하지만 간접적인 포지션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협조의 여지가 있는 거죠."
 
신 전 대사는 "중국은 5% 내지 4%를 성장해야 체제가 유지되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는 0%대, 일본도 1%대고 그 갭은 더 커진다"며 "중국의 압도적인 파워와 영향력에 대응하려면 한국과 일본이 동남아, 인도와 붙잡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제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과거사 때문에 협력 않는다는 건 '사치'…결국 리더십 문제"

연합뉴스연합뉴스
신 전 대사가 짚은 한일관계의 최대 위협은 역시 과거사 문제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로 한일협력을 포기하는 것은 '럭셔리(사치)'라고 강조했다.
 
"역사문제는 한방(韓方)으로 몸의 면역력을 크게 해서 대응해야 하고, 변화는 양방(洋方)으로 대증적으로 그때그때 처리를 해야 합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준엄하게 대응하되 그 때문에 나머지를 가리는 소위 '원트랙'은 하지 말자는 거죠."
 
한일관계에 대해 '상인의 현실 감각, 서생의 문제의식'을 언급하며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협력할 건 협력하고, 경쟁할 건 경쟁하는 합리적 관계가 돼야 한다"고 밝힌 이재명 대통령의 방향성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박근혜 정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각각 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설명하지 못했어요. 굉장히 투박했다고 정의할 수 있죠. 반대로 토착왜구를 얘기하며 한일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려 했을 때도 있습니다."
 
신 전 대사는 한일관계 투트랙 대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리더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리더십이 흔들리면 혹은 리더십이 그걸(한일문제) 이용하려 든다면 절대 해결이 안 된다는 조언이다.
 
또 1963년 독일과 프랑스가 체결했던 화해협력조약(엘리제조약)을 들며 한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가 엘리제조약을 통해 인적·문화적 교류를 실시했듯 한일간 교류를 추진해서 좀 더 신뢰관계를 양성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한일관계는 굉장히 낙관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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