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때론 멀게 때론 가깝게…진퇴 반복해온 韓日 ②갈등 남은 尹정부 '제3자 대위변제안'…첫 고비 되나 ③트럼프앞 한일 '동병상련'…새 안보·경제협력 청사진은? ④[인터뷰]"과거사 문제로 한일협력 포기는 사치" ⑤수교 60년 맞은 한일 '훈풍 전환' 계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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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에 서명하면서 양국 관계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양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했지만 과거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후퇴를 반복했다. 안보와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가까운 이웃이었지만,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갈등은 심화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한일 협력 공조의 틀을 다졌지만,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되면서 한일 외교 역시 표류했다. 윤석열 정권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긍정적이었던 일본은 이재명 대통령의 한일관계 관련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현재,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실용 외교를 강조하고 나선만큼 양국 관계에 큰 도약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65년부터 2025년까지…60년 함께한 '가깝고도 먼 이웃'
1962년 11월 12일 일본 외상실에서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를 작성한 후 담소하고 있는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왼쪽)과 오히라 일본 외상. 연합뉴스한일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예비교섭을 시작으로 14년이라는 긴 협상 끝에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 국교정상화를 이뤘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가 남아있었다.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반대로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의 문구를 담지 못했다. 특히 한일합방이 원천무효임도 명시하지 못했다.
얼기설기 봉합된 관계였던 까닭에 양국 관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이 나올 때면 관계가 경색될 수 밖에 없었다.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극한 반대로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어떤 사과나 반성의 문구도 담지 못했고, 특히 한일합방이 '원천무효'임을 명시하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진보와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와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에토 다카미 총무처장관) 등 지도자들의 망언이 잇따랐다.
김대중 정부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며 해빙기를 맞나 했지만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이 불거지며 좌초됐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도 독도 문제 등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반복됐다.
지난 2월 15일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함께 불을 밝힌 남산서울타워와 일본 도쿄타워. 연합뉴스박근혜 정부 때는 아베 정권과 과거사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가운데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뤘지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국내의 심한 반발에 부닺혔다. 그러던 와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문재인 정부 때는 우리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을 판결했다. 이에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로 대응하면서 양국 관계가 임기 내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를 지속했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일관계 해빙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2023년 3월 정부 산하 재단이 민간 기여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내놓았다. 윤 전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총 12번의 회담을 가지며 활발한 정상외교를 벌였다.
그러나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도 여전했다. 특히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한일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일본이 약속한 노동자 전시 시설에 강제성 표현을 찾기 어려웠고, 지난해 11월 열린 추도식에는 한국 정부가 막판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상외교가 전면 중지되면서 갈등은 해결되지 못한채 박제된 상태다.
이재명 식 '실용 외교'…日, 걱정과 기대 반반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일본 총리 통화 사진. 대통령실 제공새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정부 앞에도 기회와 위기가 상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기조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다. 이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해결할 것은 해결하는 실용적인 외교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이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두 가지를 다 갖춰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했는데 한일관계도 그런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한일 관계가 과거사나 독도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경제나 안보, 기술, 문화교류 등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며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훈훈하게 시작했지만 과거사 등 현안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 측은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결책인 제3자 변제방식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강경 기조로 나올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시바 총리는 통화에서 '지금까지 양국 정부가 구축해 온 기반 위에서' 한·일 관계를 더욱 진전시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협의가 지속성을 가지기를 희망하는 대목이다.
또 지난해 일본 측의 무성의한 대처로 한국이 불참했던 사도광산 추모식에 대해서도, 올해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및 안보 비용 분담 등으로 동맹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미중 경쟁 격화, 북러 군사협력과 같은 국제 정세하에서 한일·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은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함께 고민하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바탕으로 당분간 과거사는 투트랙으로 분리하고 현안에 집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