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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지나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어요" 트라우마 시달리는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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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고 지상준 군 어머니 강지은씨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맘때 되니 온몸 아파"
의인 김동수씨 아내 김형숙씨
"몸이 4월 기억…잠 못 드는 밤 계속"
높은 정서적 어려움…신체 질병 이어져
2029년 4월 시한부 의료 지원

[세월호 12년, 산 자의 상처는 현재진행형①]

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2학년 8반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달력 위에 수학여행 일정이 손 글씨로 표시돼 있다. 송선교 기자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2학년 8반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달력 위에 수학여행 일정이 손 글씨로 표시돼 있다. 송선교 기자
"저는 진짜 진짜 진짜 10년이 지나고 11년이 되고 12년이 될 때까지 제 남편이 이렇게 살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인대가 끊어질 때까지 학생들을 구한 '의인' 김동수씨.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했지만 12년째 고통에 시달리는 그를 지켜보는 아내 김형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는 대학생, 가족 등 몇몇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수, 학, 여, 행. 단원고 2학년 8반 교실 오른쪽 벽면에 걸린 2014년 4월 달력에는 15일부터 18일 날짜마다 한 글자씩 이렇게 손 글씨로 적혀 있다. 이곳도 12년째 같은 모습이다.

2014년 4월 15일 저녁 학생들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에 도착할 예정이던 세월호는 이튿날 아침 진도 해역에서 침몰 사고를 당해 304명이 희생됐다. 12년이 지났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그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몸이 기억하는 4월 16일…불면증과 이유 모를 눈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경기 안산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고 지상준군의 어머니 강지은씨를 만났다. 김지은 기자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경기 안산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고 지상준군의 어머니 강지은씨를 만났다. 김지은 기자
"괜찮은 줄 알았어요. 이 정도면 버틸 수 있겠다 싶어서 약도 끊었어요. 그런데 작년 이맘때가 되니 호흡도 못 하고 온몸이 다 아파서 급하게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어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故) 지상준 군의 어머니 강지은씨는 참사 12주기가 다가오는 지금도 매일 우울증, 불면증과 싸우며 정신과 약을 삼킨다.

매년 4월 16일이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은씨는 "이유도 모르지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막 흘러요. 그러면 사람들은 당황하죠. 그런데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일반인보다 높은 우울, 불안, PTSD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산마음건강센터(전 안산온마음센터)가 발표한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팩트시트'를 보면, 2024년 기준 유가족의 정서적 어려움은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2명 중 1명은 울분으로 인한 고통 속에 있다.

또 센터에 등록된 세월호 참사 관련 심리지원 등록자는 1천여 명이다. 해당 센터는 4·16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설치 후 운영되고 있다. 유가족만 700명 이상. 생존자와 그의 가족들도 여전히 이곳에서 트라우마를 치료한다.

형숙씨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맞다. 동수씨는 요즘 수면 유도제를 먹는데도 3시간 자고 깬다. 나도 죽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동수씨가) 새벽 3시쯤 반려견 두 마리를 데리고 1시간 30분씩 산책을 다녀온다. 밤에 잠이 안 와서"라며 "또 어떤 날은 뛰러 나갔다가 약이 깨지 않으니 길에 쓰러져서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동수씨는 딸들 걱정에 이제는 자해 대신 문신을 한다. 동수씨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 생존자, 오른쪽 가슴엔 꼴통 동수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또 뒤통수부터 가슴, 배까지 문신으로 가득하다. "온몸에 다 하고 싶다. 이거라도 안 하면 미치겠다". 동수씨의 말이다.

신체 질병 겹쳐오는데…3년 남은 의료비 지원

세월호 관련자 1천명이 받는 의료비 지원은 2029년 4월 15일 끝난다. 지은씨는 "기한이 가까워져 걱정이 많다. 부모들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트라우마는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진해진다"라며 "나이가 들수록 마음도 몸도 더 병들까 걱정"이라고 했다.

2015년 1월 제정된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참사 피해자들은 2014년 4월 16일부터 10년간 신체·정신적 질병이나 후유증이 있는 경우 정부로부터 의료 지원과 트라우마 등 검사·치료를 지원받도록 했다. 2024년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의료지원금의 기한은 2029년 4월 15일까지로 연장됐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그 이후로도 계속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게다가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산마음건강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년간 연구 참여자 369명 중 113명이 124건의 수술 경험이 있었다. 안산마음건강센터 정해선 부센터장은 "암이나 당뇨병이 심해 합병증까지 온다거나 신장 질환 등 질병들이 많이 발견됐다. 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다"라며 "트라우마 등 정신과 신체 질병 지원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은씨도 3년 전 자궁 적출 수술을 했다. 소화 기능이 약해져 소화제를 달고 사는 것은 기본이고, 치아 임플란트와 허리 시술까지 받았다.

"살 날 많은데 치료 지속돼야"…가족들 트라우마도 계속

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송선교 기자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송선교 기자
이제 성인이 된 생존자, 희생자 형제들의 트라우마도 진행형이다. 동수씨에게는 딸이 두 명 있다. 아버지가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큰딸은 응급구조사 군무원이 됐고, 작은딸은 소방관이 됐다. 큰딸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뼈로 전이된 상태다. 작은딸은 갑상선암 진단 이후 지난해 4월 16일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냈다.

고 지상준 군의 여동생도 중학생 때 참사로 오빠를 잃고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처음으로 심리 검사를 받았는데 우울, 불안, 긴장 등 모든 검사 항목마다 최고치가 나왔다. 일터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손바닥엔 땀이 흥건하게 맺힌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준군의 여동생도 이 계절이 찾아오면 긴장도가 높아져 몸이 아프다. 어머니인 지은씨는 "(딸이) 잠을 못 자는 건 기본이고 위염이 계속 있다. 치아, 입안에도 통증이 있고 머리도 아픈데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하니 타이레놀을 수시로 먹으며 버틴다"고 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생존자나 형제, 자녀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는다는 것이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이란 걱정 때문에 의료지원을 신청해서 받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정해선 부센터장은 "생존자 청년들, 형제자매들은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이들은 그동안 초기 지원을 제대로 못 받아서 부모님보다도 오래 지원이 지속적으로 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주길 바라"

이들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형숙씨는 동수씨가 목욕탕에서 그를 알아본 시민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등을 밀어준 일이 가족들을 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동수씨를 불러서 손 한 번만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지은씨는 "의료 지원, 트라우마에 대한 지원이 계속 필요하다는 생각만 가져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조금 너그러워지면 좋겠어요.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한테 '너희 보상 다 받았으면 끝난 거 아니야? 뭘 또 바라?' 이런 시각이 아니라, '여전히 아프구나, 아플 수 있겠구나' 조금만 너그러이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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