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12년 지나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어요" 트라우마 시달리는 생존자들 ②'유효기간' 없는 1천개의 트라우마…"시한부 지원 연장해야" (계속) |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 등 피해자 상당수가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트라우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지만 정부의 의료 지원은 3년 뒤 끊어진다. 정부 지원 기한 자체를 폐지하고 심리적 질병에 더해 신체적 질병까지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안산마음건강센터(전 안산온마음센터)가 발표한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참사 심리지원 등록 대상자는 총 1021명이다. 그중 유가족이 782명, 생존자가 97명, 생존자 가족이 111명, 간접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31명이다. 1년간 방문상담 2551회, 전화상담 1만 2080회 등 수차례 상담도 진행됐다.
센터가 발표한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팩트시트'를 보면 2024년 기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치료받고 있는 정신질환은 불면증, 우울증, 만성두통 순으로 많았다. 신체질환은 고혈압, 당뇨병, 위·십이지장궤양, 요통·좌골 신경통 순으로 많았다. 유가족은 질병 위험 발생도가 일반인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2022년 기준 정신·행동장애가 약 2.4배, 내분비·영양·대사 질환이 약 2.1배 높았으며, 이 외에도 소화기·신경계·근골격계 등 다른 신체 영역 위험 발생도가 1.2배~1.8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정부의 세월호피해자 의료비 지원은 오는 2029년 4월까지만 이뤄진다. 2015년 1월 세월호피해지원법을 제정하면서 2024년 4월 15일까지 참사 후 10년간 신체·정신적 질병이나 후유증에 대한 의료 지원과 트라우마 등 검사·치료를 지원하도록 했다. 국회는 법을 한 차례 개정해 2029년 4월 15일까지 5년을 연장했다.
연합뉴스하지만 트라우마는 12년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산마음건강센터 정해선 부센터장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강도가 초기보다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일반인과 비교하면 몇 배 이상 심하다. 희생자의 생일이나 명절 때마다 증상이 발현하는 등 기념일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며 "트라우마 치료 기한을 없애거나 더욱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은 지난 10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 의료 지원금 지급 기한을 삭제하는 '세월호피해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CBS노컷뉴스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 피해는 장기적 관리가 필요하고, 전문상담, 심리치료 등도 지속적인 지원 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해외 사례를 들며 "미국은 2019년 9·11 희생자 보상기금 영구승인 법안을 마련해 보상 청구 마감일을 2020년에서 2090년으로 길게 연장했고 영국은 참사 피해자들에게 치료뿐 아니라 복지서비스 등도 지원하고 있다"며 "이번 12주기에는 지원 기한을 무제한으로 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치료 범위를 더 넓히는 방식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가져가고 있다. 류영주 기자전문가들도 세월호 등 참사 지원 기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화여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심민영 교수는 "이들의 회복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한을 설정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원 기한은 삭제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어 "2차 가해도 매우 많았고 정쟁으로 인해 피해자 회복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원 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참사 피해 지원에 매우 적극적인 사례로 꼽힌다. 9·11 테러 이후 10년간 심리치료에만 3조원을 투입했다. 또 사고 이후 10년간 피해자들을 관찰하고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해 이를 바탕으로 지원 법안들을 마련했다.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도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제도를 오래전부터 도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의 제1의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사고 이후 대응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행정은 끝내야 하며, 예방 중심의 제도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재난 피해자 보호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