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글 싣는 순서 |
①때론 멀게 때론 가깝게…진퇴 반복해온 韓日 ②갈등 남은 尹정부 '제3자 대위변제안'…첫 고비 되나 ③트럼프앞 한일 '동병상련'…새 안보·경제협력 청사진은? ④[인터뷰]"과거사 문제로 한일협력 포기는 사치" ⑤수교 60년 맞은 한일 '훈풍 전환' 계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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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시대를 맞은 한국과 일본은 '뜻밖의' 동변상련 처지에 놓였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동맹은 비용'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하에서 역내 안정을 꾀해야 하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관세전쟁과 보호주의 무역을 함께 헤쳐야 한다. 새로운 세계질서에의 적응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의 유인이 역설적으로 커졌다는 평가다.
캠프데이비드 선언 주역들의 퇴장…한미일 협력은 어디로?
2023년 8월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성과로 꼽히는 것은 캠프데이비드 선언이다. 지난 2023년 8월 한미일 3국 정상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고 밝혔다. 한미일 3국의 협력을 사실상의 '군사동맹'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캠프데이비드 선언의 주역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 조 바이든 전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모두 퇴장했다. 이후 가치에 기반한 동맹관계보다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거래 중심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를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며 캠프 데이비드 선언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핵 억제와 대북 제재를 방점에 두고 한미일 협력을 추진했던 바이든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현실적으로 북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반드시 미국을 우선시해야 한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 주된 고려였던 날은 끝났다"는 지론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美동맹 역할 의심 커지는 한일…"새로운 안보질서 구축해야"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 동맹에 대한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 트럼프에 일본 국민들의 미일동맹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일동맹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뢰도가 예전과 다르다는 신호는 여론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전후 80주년을 맞아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사시 미국이 일본을 진심으로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한 일본인은 15%에 불과했다. 신문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불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중국을 견제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미국 정부의 기조는 트럼프 시대에도 유효하다. 한국과 일본이 여전히 미국에게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은 중국 앞의 항모"라고 발언한 것 또한 북한이 아닌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필요성 자체를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한미일 협력에서 벗어나 한국과 일본이 함께 협력의 대상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전통적인 안보 차원에서 한미일 협력을 틀에 넣고 봤다면 트럼프시대에서는 한미일의 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국가들과 협력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며 "물론 미국을 배제할 순 없지만 트럼프가 강경하게 나올수록 한국과 일본, 호주 등 유사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의 협력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美중심 보호주의 파도…한일 '경제연대' 가능할까
연합뉴스트럼프시대 가장 직접적인 도전을 맞은 분야는 관세를 비롯한 통상분야다. 일본은 미국과 가장 먼저 관세협의를 시작했고, 한국 정부도 7월 8일 이른바 '줄라이 패키지'를 앞두고 세부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대미 무역흑자를 들어 관세조치의 주 타깃으로 한국과 일본을 지목했다. 양국은 대미 투자 등의 협상카드를 내세우며 관세 보복을 피하고자 하는 처지다.
미국의 보호주의에 맞서 일본과 함께 역내 경제협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재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 9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단순한 협조 정도가 아니라 EU와 같은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본을 비롯한 이웃국가와의 '경제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또한 긍정적으로 화답한 바 있다. 여당에서도 대선 기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2018년 출범한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멕시코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무역협정이다. 과거사 변수로 냉온탕을 오가는 한일 관계를 경제협력을 고리로 관리할 수 있는 기대감도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일본이나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유사한 입장국들이 경제 통상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자 프레임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특히 CPTPP는 미국의 우호국들로 결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빠져있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동맹국들이자 자유주의 질서를 원하는 동지국들이 힘을 합쳐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질서를 만들고 미국이 뒤따라 참여하게 하는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