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대선 후보. 연합뉴스외교가에서 '말'은 중요하다. 외교관들은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도 잘하고, 곤란한 질문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교묘하게 잘 빠져나간다. 협상 상대방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단순히 처세의 문제만은 아니다. 외교 협상에서 때로는 말이 곧 국익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외교·안보 공약과 관련해 후보들의 '말'이 주목받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후보가 발언한 것에 대한 정치적 공세가 이슈가 되며 관심을 모으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북한이 왜 휴전선에 장벽을 쌓나. 남쪽에서 탱크로 밀고 올라갈까 봐 무서워서 장벽 쌓은 거 아니겠냐"며 그걸 보고 계엄을 확신했다고 했다.
"(윤석열정부가) 오랫동안 북한을 자극했는데 북한이 눈치를 채고 잘 견딘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의 도발 행동은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과 다른 데다 일견 북한의 도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발언이다.
이 후보의 '셰셰'(谢谢·고맙습니다) 발언도 다소 가벼운 측면이 있었다. 정치권은 곧장 나서 이 후보를 '친중'으로 몰아세웠다. 이 후보는 적을 만들지 않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사구시 외교를 하자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는 TV토론에서 "국익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고 대만과 중국 간 갈등에 너무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그는 "'친중'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부분인 것 같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발언 역시 논란이 됐다. 김 후보는 앞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이 잘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라며 "일정하게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우리나라 방위비 인상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외신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사실상 향후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관련 이슈에 대한 첨예한 논의가 예정돼 있다.
류영주 기자그런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가 국민의견 수렴과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나와야 할 발언을 내놓아버린 것이다.
김문수 후보는 또 비핵화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면서 핵 균형도 언급했는데, 자칫 한국의 핵무장을 시사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연쇄적인 핵무장을 부를 수 있다는 점, 현실성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리 국민들은 물론 주변국들이 이를 잘못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특히 이같은 후보들의 가벼운 발언에 대한 정치적 공세까지 겹치고 있다. 한 외교안보 당국자는 최근 후보들의 관련 발언을 두고 "외교는 국익이다. 국익에 부합하는 공약인지 검증하고 알아보면 될 일인데 사상검증처럼 몰아가며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외교·안보 분야 발언은 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국가의 외교와 안보는 곧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발언이 국익에 배치되지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후보들의 외교 안보 공약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계엄 사태 및 탄핵을 거치며 우리 정부의 외교시계는 멈춰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시계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적잖은 힘을 쏟게 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말로 향후 새 정부의 운신 폭을 좁혀서는 안될 것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