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극심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경기 진작 추경'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려면 다음 달 발표할 세법개정안에서 '증세 논의'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 경정 예산안인 '새정부 추가경정 예산안'은 '내수 회복을 통한 경기 진작'과 '속도'에 방점이 찍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날은 지난 4일, 추경안을 공개한 날은 19일이다. 불과 보름 만에 추경안 구성을 마친 셈이다. 비록 지난 4월 발표됐던 1차 '필수 추경'을 추진할 때부터 2차 추경이 예고됐지만, 전례를 찾기 힘든 '불도저 추경'이다.
이렇게 다급히 추경을 마련하면서까지 달성하려는 목표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직접 "경기 진작 요소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추경안에서 돈의 흐름을 살펴보면 세출 경정 예산 20조 2천억 원 중 15조 2천억 원이 경기 진작에 쓰인다. 이 중에서도 '전국민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10조 3천억 원)을 필두로 한 '소비여력 보강'에 11조 3천억 원이 소요된다. 추경으로 쓰는 돈의 75%가 경기 진작, 절반이 내수 회복에 집중된 사실상 '원포인트 추경'이다.
기획재정부 임기근 2차관이 6월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새정부 추가경정예산안 상세 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정부가 이처럼 서둘러 경기 진작에 나선 이유는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올해 0%대 초(超)저성장이 우려된다. 이미 올해 1분기 -0.2% 역성장하는 등, 4분기 연속 0% 내외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가장 큰 원인은 극심한 내수 침체로, 12.3 내란 충격에 건설업 불경기까지 맞물려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관세장벽, 긴박한 중동 정세 등 대외불확실성도 확대일로에 있다.
문제는 이처럼 속도전을 펼쳐가며 내수 진작을 위해 시장에 돈을 푸느라, 윤석열 정부가 남겨둔 구멍난 나라 곳간을 채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 추경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면 정부의 지출은 전년보다 6.9% 늘어난 702조 원에 달하게 된다. 국채도 19조 8천억 원 추가발행해서 국가 채무 규모가 1300조 원을 돌파해 GDP 대비 49.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110조 4천억 원으로 24조 원(0.9%p) 치솟고, 이에 따라 GDP 대비 적자 비율도 -3.3%에서 -4.2%로 악화될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부 재정 지표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다.
다만 아직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 정부와 세입 경정까지 포함해 총 30조 5천억 원에 불과한 추경에 재정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것도 무리다. 이처럼 정부 재정이 악화된 까닭은 앞서 최근 5명의 대통령 임기 내내 적자가 반복된데다, 특히 전임 윤석열 정부 시절의 모순된 재정 정책이 결정타를 가했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정부는 겉으로는 재정건전성을 거듭 강조했지만, '묻지마 감세' 정책과 코로나19 후폭풍이 겹치며 임기 3년 내내 정부 재정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게다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87조 2천억 원이나 세금을 덜 걷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끝내 세입 경정 없이 지출은 줄이면서 감세를 반복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올해 0%대 성장이 예상되고, 내수와 수출 모두 얼어붙는 마당에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획재정부 임기근 2차관은 GDP 대비 적자 비율이 -4%를 넘어선 데 대해 "현재의 경제, 재정 여건을 봤을 때 (재정준칙법에서 정한) -3%를 경직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와 재정 운용에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확장적 재정 기조를 당분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미 정부 재정의 적자폭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에서 경기 침체로 나가야 할 돈 씀씀이를 줄일 수는 없다면 남은 답은 돈을 들여오는 '증세'가 될 수밖에 없다. 통상 매년 7월 정부가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이 올해 유독 주목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에 대해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신승근 소장(한국공학대학교 복지행정학과 교수)은 "증세 없이는 계속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고 생산가능연령이 줄면서 소득세 세수는 계속 감소할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시절 감행했던 부자 감세부터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대폭 낮추는가 하면, 가업상속공제 도입과 상속세 개편,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부자 감세'를 대대적으로 추진해 재정 적자를 자초했는데, 이를 '정상화'하자는 얘기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도 "세수 기반이 너무 위축돼 이를 다시 회복시키지 않으면 양극화, 저성장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으로, 증세 논의로 정면 돌파해야 할 때"라며 "특히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 시절의 부동산 세제를 강화하면 세수도 회복될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과열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