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블루 제공 타이완 작가 양솽쯔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타이완 작품 최초로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일본번역대상, 타이완 금정상까지 거머쥔 화제작이다.
이 소설은 1938년 타이완을 배경으로 일본 여성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타이완 여성 통역사 왕첸허가 함께하는 1년간의 여정을 따라간다. 두 사람은 종관철도를 타고 섬 곳곳을 돌며 러우싸오, 무아인텅, 타이완식 카레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타이완의 삶·언어·문화에 접속한다. 하지만 여행의 표면 아래에는 식민지 권력관계와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지,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가 지닌 균열이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양솽쯔는 이 관계를 단순한 우정담이 아니라 '불가능한 우정의 구조'로 바라본다. 제국의 작가인 치즈코는 첸허를 동료이자 친구로 대하려 하지만, 첸허가 내면에 감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제국의 언어와 규율을 강요받았던 식민지 여성의 현실이 치즈코의 호의와 무해한 말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작품의 핵심 긴장이 된다.
작품에서 음식은 중요한 서사 장치다. 타이완 각지의 요리가 단순한 미식 기록을 넘어, 민족·계층·역사적 기억이 켜켜이 쌓인 문화적 기표로 등장한다. 첸허가 만든 타이완식 카레는 일본식도 인도식도 아닌, 타이완만의 방식으로 변주된 음식으로 타이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이 소설의 형식 또한 독창적이다. 양솽쯔는 일본인 화자의 글을 '번역자'인 자신이 중국어로 옮기는 설정을 두어 식민지 기록의 왜곡·생략·번역 권력의 층위를 메타픽션 구조 안에 드러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작품을 두고 "마트료시카(러시아 전통인형)처럼 겹겹이 쌓인 번역의 구조 자체가 식민주의 권력의 은유"라고 평한 바 있다.
작품은 여성·식민지·정체성이라는 보편적 질문을 기반에 두면서도, 타이완 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양솽쯔는 전미도서상 수상 소감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했으며, 이 소설은 바로 그 의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양솽쯔 지음 |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4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