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제공 시대의 스승 리영희를 다시 호출하는 회고집 '나와 리영희'가 출간됐다. 리영희재단이 2022년부터 발간해온 뉴스레터 글을 바탕으로 황석영·정지아·유홍준·백낙청 등 32명이 기억 속 '사람 리영희'를 되살린 책이다. 올해는 리영희(1929~2010) 타계 15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책은 기자·비평가·학자로서 권력과 전쟁의 본질을 끝까지 의심하며 '생각하고 저항하는 법'을 가르쳤던 그의 공적 면모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담았다.
뇌졸중 후유증 속에서도 제자에게 삐뚤빼뚤한 편지를 보내던 모습, 병문안 온 후배들의 '재롱' 앞에서 아이처럼 웃던 표정, 말년에 경비행기를 타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던 일화 등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정병호 교수의 회고에 등장하는 "권력에 맞서 싸워보지도 못한 것들이…"라는 일갈은 그가 평생 붙들었던 원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홍범은 그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비판한 기자"로, 정범구는 "치열하되 냉소하지 않았던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약자 편에 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태도는 여러 필자의 회고에 반복된다.
한편 책에는 '공학도적 글쓰기'라 불린 그의 치밀한 탐사 취재 방식, 옥중에서 아내에게 띄운 편지, 일본 특파원들과의 교유 등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기록도 풍부하게 실렸다. 글쓴이들은 그를 "지식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완수하고자 한 사람"으로 회고하며,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어떤 기준을 일깨운다고 말한다.
리영희재단 기획 | 창비 | 368쪽
생각의힘 제공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법무부 감찰관 자리에서 사표를 던진 류혁 전 검사가 계엄 1년을 맞아 회고 에세이 '단 하나의 사표'를 펴냈다. 계엄에 사직으로 맞선 '단 한 명의 공직자'가 왜 그날 "계엄 관련 지시는 일절 이행하지 않겠다"며 회의실 문을 나섰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1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담은 기록이다.
책은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소집, 새벽 회의장 분위기, '지금 사직서를 내겠다'는 선언과 장관과의 설전, 언론 인터뷰에서 계엄을 '정신 착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를 '내란죄'라고 규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복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을 '영웅적 결단'이 아닌,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싶었던 한 평범한 사람의 최소한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대 출신 검사, 프라모델·천체관측·철인3종에 빠진 '취미 부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검사는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거듭 드러낸다. 통영지청 초임 시절 문건이 그대로 남아 있던 낡은 서류함,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이어진 현장 기억,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소박한 애정이 함께 엮이며, 계엄 저항의 장면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돌발 행동이 아니라 오랜 직업윤리와 삶의 태도에서 나온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책 후반부에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 함께했던 재판 경험, 추미애–윤석열 갈등 당시 '징계 절차'에 대해 소신을 밝혔던 감찰관 시절, 그리고 "좋은 검사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평가하는 '검사 윤석열'의 초상이 담긴다. 저자는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아니라 기록과 절차, 직업적 관찰에 기대어 한 권력자의 몰락을 되짚는다.
류혁 지음 | 생각의힘 | 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