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내 출판계가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정작 해외 시장에서는 한국 출판물의 성장세가 뚜렷이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출판학회(회장 김진두)는 지난달 28일 열린 제48회 정기학술대회에서 K-북의 현주소를 점검하며 "축포보다 냉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조발제에 나선 박세현 팬덤북스 대표(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는 "노벨상 수상으로 국내 소설 판매량이 22% 가까이 증가했지만, 해외 수치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드라마·K-팝·웹툰 등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한국 출판물은 최근 5년간 '성장 둔화'가 두드러졌으며 문화콘텐츠 경험률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며 두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처럼 해외 확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IP 허브의 부재와 국가별·권역별 장르 포지셔닝 실패가 그것이다.
그는 "해외 독자는 이제 업마켓 픽션(Upmarket Fiction)처럼 장르가 명확한 작품을 원한다"며 "막연한 '한국문학' 브랜드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경쟁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국출판학회 제공이어 박혜지 혜지원 편집장은 '현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일본 도서의 '시바견'을 한국 정서에 맞춰 '진돗개'로 바꾸려다 원저작권자 동의를 얻지 못해 계약이 무산된 사례를 소개하며 "언어 번역을 넘어 문화적 번역까지 고려한 치밀한 로컬라이징이 필수"라고 말했다.
전문 인력 부족 문제도 제기됐다. 이정미 글로벌이민통합연구소 소장은 "현재 K-문학의 성과는 시스템이 아닌 '우연히 등장한 개인 작가'에 의존하고 있다"며 "기획·저작권·마케팅을 아우르는 전문 인력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지속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에 앞서 열린 제19회 출판전공 대학원 우수논문 발표회에서는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균형적 가치(성신여대 이선주), 콘텐츠 서비스 품질 요인 분석(경희대 홍태형) 등이 발표됐다. 행사 말미에는 제46회 한국출판학회상도 시상됐다.
한국출판학회 관계자는 "한강 신드롬에 가려진 K-북의 성장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며 "현지화·장르 다변화·인력 양성 등 제안된 전략이 K-북의 재도약을 위한 실질적 로드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