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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카멜 다우드 첫 방한…서울서 '내전·검열 문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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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공쿠르상 수상 카멜 다우드 첫 방한 기자간담회
'후리' 통해 알제리 내전·여성 폭력·기억의 정치 조명
탈식민화 이후 '내전 세대'의 상처와 공포 고스란히 전달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알제리 내전의 '검은 10년'을 여성 생존자의 목소리로 복원한 2024년 공쿠르상 수상작 장편소설 '후리'의 작가 카멜 다우드가 방한해 전쟁과 국가폭력, 그리고 망각을 강요하는 정치에 맞서는 문학의 역할을 한국 독자들과 나눴다.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우드는 "저널리즘은 상처를 '측정'하지만,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문학"이라며 자신의 소설을 "지워진 역사를 다시 말하게 하는 한 여성의 증언"이라고 설명했다.

'후리'는 알제리 정부가 헌법과 법률 차원에서 언급을 금지해 온 내전(1991~2002), 이른바 '검은 10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오브(새벽)'는 1999년 12월 31일 하드 셰칼라 마을 대학살의 유일한 생존자로, 일가족이 몰살당한 밤 목이 그이는 공격을 당한 뒤 목에 삽입된 튜브로만 호흡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작품은 오브가 뱃속의 딸 '후리'에게 말을 건네듯 자신의 상처와 가족의 죽음, 잊혀진 학살의 기억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브는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라고 말하며, 보호와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과 여성혐오의 구조를 끝까지 추적한다.

'후리'는 이슬람 전통에서 천국에서 의로운 남성에게 주어진다고 믿어 온 처녀들을 뜻한다. 다우드는 남성의 쾌락을 위한 상상 속 존재였던 '후리'라는 단어를 현실의 여성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제목은 신의 약속에 묶인 판타지가 아니라, 폭력과 신앙 아래 침묵을 강요당한 '진짜 후리들'을 향한 경의"라고 밝힌 바 있다.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한국어판 서문과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소설은 독립전쟁과 내전, 그리고 형제살해에 이르는 알제리 현대사의 복잡한 층위를 여성 생존자의 몸과 기억 위에 새기며, 개인의 고통을 사회의 윤리로 확장한다.

작품이 다루는 '검은 10년'은 알제리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로 꼽힌다. 1991년 이슬람구원전선(FIS)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이슬람 무장세력과 정부군·준군사조직 사이의 유혈 내전이 10여 년간 이어졌다.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내전 이후 제정된 '국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헌장'은 국가와 무장세력이 저지른 범죄를 대거 면책하고, 내전의 폭력을 공적으로 언급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다. 그 결과 내전의 기억은 국가 차원에서 봉인됐고, 피해자들의 증언은 법적·사회적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 됐다. 알제리 정부가 '후리'의 국내 출간을 금지하고 금서로 지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카멜 다우드는 간담회에서 "작가이지만, 여전히 기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며 자신의 출발점이 내전 보도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22살 때 내전 한복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많은 동료들이 살해당하거나 망명했다"고 회상했다.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학살 현장을 찾아가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그 숫자를 기사로 옮기는 일이 젊은 기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그는 "그런 장면들을 본 뒤에 어떻게 편히 잠들 수 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 이를테면 진실을 말하는 일이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같은 문제를 문학의 영역에서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소개된 일화는 소설 속 장면과도 겹친다. 내전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교사 11명이 타고 있던 버스를 습격해 운전기사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살해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운전기사에게 "우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라"고 요구한다. 다우드는 "기사로서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면 살인자들의 확성기가 되는 셈이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거짓을 쓰게 된다"며 "이 딜레마가 바로 저널리즘의 한계이자, 내가 소설을 통해 탐색하고 싶은 윤리적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패배자의 언어를 쓰는 작가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그 언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 세대"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식민 지배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택한 이유에 대해 "프랑스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라 나의 기억과 욕망의 언어"라며 "어렸을 때 처음 읽은 책과 만화의 문장이 모두 프랑스어였고, 종교와 권력의 결탁에 갇힌 아랍어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진실을 프랑스어로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후리'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것은, '식민의 언어'를 통해 식민과 내전의 역사를 비판하는 역설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탈식민화 이후 '내전 세대'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민음사 제공 민음사 제공 
간담회에서 다우드는 소설의 결말을 '희망'으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답했다.

그는 "아랍 사회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보다 이미 죽은 선조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며 "나는 그 시선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삶의 의미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아이들은 우리에게 다시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어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오브가 뱃속의 딸을 향해 자신의 공포와 상처를 고백하면서도 끝내 삶을 선택하는 결말은, "죽음이 아니라 생을 향해 기억을 이어가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후리'의 서사 구조 역시 이런 문제의식과 맞물린다. 1부 '목소리'에서 오브는 말을 잃은 채 속삭이는 내면 독백으로만 존재하지만, 2부 '미궁'에서는 그녀를 학살의 현장으로 데려가는 화물차 운전사 아이사 등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겹치며, 3부 '칼'에서는 오브가 과거의 마을로 돌아가 기자이자 증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피해자와 목격자, 가해자의 목소리를 번갈아 배치하는 방식은 전쟁의 기억을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복수의 기억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출판사는 이 작품을 두고 "망각이 제도화된 사회에서 문학이 어떻게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내전의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후리'로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열린 한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다우드는 "내전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고, 나 같은 저항 작가들은 국경 밖을 떠돌고 있다"며 "그럼에도 오늘 이렇게 자유로운 몸으로 서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과 독재, 쿠데타를 겪은 뒤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알제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어떤 나라든, 특히 최근 '역사의 되풀이'를 걱정하는 나라라면 피해자들이 말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국어판 출간과 작가 방한은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번역·출판 지원 프로그램과 양국 출판사의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다우드는 "자신이 쓴 소설이 먼 나라 언어로 옮겨지고, 그 책을 통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작가로서 특별한 경험"이라며 "알제리의 상처를 다루고 있지만, 전쟁 후의 삶과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한국 독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로 읽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검은 10년'을 배경으로 한 알제리의 금서가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자리이자, 내전과 독재, 쿠데타 이후의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와 국가의 망각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전쟁을 겪은 한 기자 출신 작가의 소설은, 내전의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한국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돌려준다.

"당신은 누구의 기억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누구의 침묵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인가."


카멜 다우드 지음 |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5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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