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비핵화 원칙을 포기할 경우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하루 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고 나서 주목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대해 한걸음 뒤로 물러서 기존 입장을 강조한 것을 두고 북미간 기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23일 미국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대북 억제 태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대북정책 관련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3국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는 가운데,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DPRK)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명시했다.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참석,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자체로는 한미일 3국이 그간 지속적으로 표명해 온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 전날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을 전제로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고려하면 비핵화 원칙을 재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3국 장관은 또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함께 대응할 필요성과,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위반·회피에 단호히 대응함으로써 대북 제재 레짐을 유지·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전날 "제재나 힘의 시위로써 우리를 압박하고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한 데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한미일 3국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의 공개적인 발언을 통해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지만, 북한에 처음부터 주도권을 내준 상태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미일 3국이 북한과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 전 비핵화 대응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 의견을 나눠야 한다. 이날 성명은 한미일 3국이 본격적인 북미대화 시작 전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미간 입장을 확인하는 동시에 일단 양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기싸움으로도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식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비핵화 원칙에서 물러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외교안보 관료들의 투트랙 메시지로 북한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북한을 여러차례 '누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로 부르며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다만 백악관이나 국무장관 등 공식적인 메시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당분간 한미일 공동의 목표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우호적인 메시지 등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타진하고 설득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