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400평 땅에서 토종 다래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홍석진(40세)씨. 강원도는 서울과 달리 청년 연령이 만 45세까지다. 영월=양민희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강남역 가듯…맛집 갈까? 목포로 가요" 강진 사는 MZ들 ②"왜 다 서울로? 울분이 찼다" '소멸 위기'로 사업하는 청년 ③넥타이 '질끈' 서울내기가 400평 다래 농사 짓게 된 사연 ④전 세계 50곳 돌았던 그녀…서울 아닌 '완주'였던 이유 ⑤"남해의 미래요? 그냥 서울 가고 싶죠" 그럼에도 남은 이유 ⑥"인구, 늘어봤자 정치인이나 좋아…지방 소멸 대위기? 과장됐다" ⑦지방 소멸 돌파구 '여기' 있다…골목길 경제학자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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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얼굴, 보풀이 일어난 듯한 후드 후리스, 앉았다 일어났다하기에 편안한 먹색 츄리닝 바지. 그리고 신발 밑창을 따라 진흙 자국이 가득한 흙투성이 운동화.
불과 6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런 복장이 아니었다.
빳빳하게 다린 새하얀 와이셔츠. 목 끝까지 채운 단추. 발을 꽉 조이는 딱딱한 구두를 신고 오전 9시, 이르면 7시에 칼같이 서울 중심부 광화문으로 출근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대 중반까지 '서울이 답'이라 믿었던 홍석진(40세)씨. 그랬던 그가 어쩌다 월요일 오후 2시, 이런 차림으로 흙바닥에 앉아 햇볕을 만끽하게 된 걸까.
이제는 '청년 농부'로 불러달라는, 강원도 영월 400평 땅에서 토종 다래 농사를 짓는 석진씨를 만났다.
석진씨는 6년 전까지만 해도 빳빳하게 다린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서울 중심부 광화문으로 출근했다. 본인 제공Q. 왜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정년까지 바라볼 정도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업무상 실수를 해서 경위서를 쓰게 되는 일이 생겼어요. 이후 몇달간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고 투명인간처럼 지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무너질 수 있구나' 충격이었어요. '다른 직장 알아볼까?' 싶다가도 어디든 또 같은 반복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아이가 한 살이었는데 아이가 저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Q. 직장에서 겪은 안 좋은 일이 왜 '서울을 떠나고 싶다'까지 이어지신 건가요?
돌이켜보면 계속 쫓기듯 살아온 것 같아요. 지옥철 타고 출근하고, 일이 늦게 끝날 때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부족하고…어디를 가든지 경쟁은 치열했고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까지 다다르게 된 것 같아요.
석진씨는 6년 전까지만 해도 빳빳하게 다린 양복을 입고 서울 중심부 광화문으로 출근했다. 사진은 해외 출장에서의 모습. 본인 제공Q. 어느새 강원 영월 생활 6년차신데, 서울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저희는 신혼 때 차를 샀다가 팔았거든요. 서울은 차가 막히니까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차가 지금 두 대에요. 저 한 대, 와이프 한 대.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이기도 한데 차를 타도 막힐 일이 거의 없어요. 또 어딜 가든지 다 자연 공간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드라이브 할 때 감동하게 돼요.
Q. 영월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인데 생활하면서 인프라나 편의시설에 대한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사실 인프라는 서울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면 가까운 제천이나 원주 가면 돼서 크게 불편함이 없어요.
석진 씨는 "(서울에선) 계속 쫓기듯 살아온 것 같다"면서 "강원도 영월에선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영월=양민희 기자Q. '지역 의료 인프라 붕괴' 이런 얘기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첫째는 6살, 둘째는 3살이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어렸을 때 갑자기 아플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땐 괜찮으세요?
첫째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귀농 후 1년이 채 안됐을 때 였는데, 온몸 전체에 붉은 반점이 퍼졌어요. 그때 코로나19 시기였어서 영월 의료원에 갔더니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원주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야했어요. 근데 그런 일을 겪었더라도 솔직히 크게 막 불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아요. 1시간이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기본적인 치료는 영월 의료원 소아과에서 해결 가능해요. 사실 아프려고 우리가 살지는 않으니까. 안 아프려고 시골에 왔고, 시골에 오니까 좀 더 건강해지고 그런 게 있어요.
Q.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서울을 떠났다고 하셨는데요, 강원도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은 어떤가요?
좀 더 풍요로운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몇 개 있거든요. 예를 들어 숲속 놀이터가 있는데 상주해 계시는 해설사분들이 있어서 꽃잎으로 반지 만들기 체험 같은 것들이 많아요. 축제나 공연 등이 서울보다 퀄리티는 낮을 수 있지만, 어렸을 땐 자주 신나게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나 싶어요.
석진 씨는 "10년이 지나도 (다래 농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쪼그려 앉아서 흙 다듬고 잡초를 제거할 때 너무 좋다. 농사를 못 놓겠다"고 말했다. 영월=최보금 기자Q 도시에 살다가 영월에 와서 아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사실 저는 서울에서는 좀 먼지 같았던 것 같아요. 여기 가면 이렇게, 저기 가면 저렇게 치우쳤던 것 같은데…여기서 제일 좋았던 건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아이들도 자신만의 색깔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서울에 살면 너무 치열하니까 쫓길 것 같아요.
석진 씨는 "앞으로 복합 힐링센터(사진 속 건물)를 지어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재충전과 함께 나를 찾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월=최보금 기자사실 다래 농사는 수익을 내려면 몇 만평의 규모가 필요하다. 특히 토종 다래는 3년 차부터 수확을 시작하는데, 석진 씨는 이제서야 3년 차에 접어들었다. 1년에 한번 수확하기 때문에, 10년을 해봤자 7번의 수확에 그친다.
석진 씨는 "10년이 지나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농사를 못 놓겠다"고 말한다.
"쪼그려 앉아서 흙 다듬고 잡초를 제거할 때 너무 좋아요. 컴퓨터 작업을 하면 모니터만 보고 계속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근데 농사를 지으면 흙과 오감으로 느껴지는게 너무 많으니까… 그냥 농사 자체가 치유인 것 같아요"
농장 이름은 다독임('다독'이다+수풀 '림')이다. 자신이 농사로부터 받은 치유를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는 복합 힐링센터를 지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재충전과 함께 나를 찾는 경험을 하길 기대한다.
※ [어쩌다, 지방?] 청년들의 풋풋한 모습을 숏폼으로도 보러오세요. 2360km를 달린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접속하세요. 사이트 주소를 복사 붙여넣기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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