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태어나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으며 자라왔던 조자영(사진)씨는 2022년 완주로 귀촌했다. 자영 씨는 "마치 미국이나 스페인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완주=최보금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강남역 가듯…맛집 갈까? 목포로 가요" 강진 사는 MZ들 ②"왜 다 서울로? 울분이 찼다" '소멸 위기'로 사업하는 청년 ③넥타이 '질끈' 서울내기가 400평 다래 농사 짓게 된 사연 ④전 세계 50곳 돌았던 그녀…서울 아닌 '완주'였던 이유 ⑤"남해의 미래요? 그냥 서울 가고 싶죠" 그럼에도 남은 이유 ⑥"인구, 늘어봤자 정치인이나 좋아…지방 소멸 대위기? 과장됐다" ⑦지방 소멸 돌파구 '여기' 있다…골목길 경제학자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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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여기(완주)서 사는 게 해외 생활 하는 것 같거든요. 미국이나 스페인의 조용한 시골 마을 느낌?"
조자영(41세) 씨는 세계 곳곳을 누볐다. 대학시절 워킹홀리데이로 호주 1년·캐나다 1년을 지냈고, 미국에서도 약 3개월간 머물렀다. 이 외에도 방문 국가만 총 20여 곳, 도시로만 따지면 50개가 넘는다. 틈만 나면 캐리어를 챙겼고,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잠시 항공사에 몸 담기도 했다.
"워홀로 간 호주에서 농사일을 처음 배웠어요. 몇백 평 포도밭에 물을 주거나, 체리를 땄거든요. 캐나다에서는 주스 만들어주는 가게에서 일하며 손님 응대부터 매장 운영 방식을 익혔고요."
인천에서 태어나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으며 자라왔던 자영 씨는 남들처럼 회사에 취업해 월급 받으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도, 태어난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업을 창조하며 산다는 발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방문한 해외 국가만 총 20여 곳에 달하는 자영 씨는 "시골살이나 자영업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나도 모르게 워홀이나 여행 등을 통해 작게 작게 경험했던 것들이 어떻게 보면 지금을 만든 것 같다"고 회상했다. 노컷뉴스"대학을 졸업할 때쯤엔 당연히 회사 취업해서 남들처럼 월급 받으며 사는 게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거라고 생각 했죠."
그렇게 30대 후반까지 서울 합정·한남, 김포 등을 오가며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출퇴근길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지하철 속에서 보냈고, 왕복 3~4시간은 기본이었다.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엔 사람들로 뒤엉켰다.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보단 당연한 생활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진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많은 게 편한 게 아닌 거구나'고 깨달았어요. 집합이 금지 되고 사람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들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이게 틀릴 수 있구나' 싶었죠. 그러면서 '인구가 적은 지방은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완주군 고산면의 한적한 시내 모습. 자영 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귀촌했다. 그녀는 "인구가 적은 지방에선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완주=최보금 기자당시 자영 씨는 IT 비대면 교육이나 교재 검수 등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다. 주거지에 제약이 없으니 '사람 없는 곳에서 좀 더 편하게 살아보자'는 가벼운 발상을 실행하기에 부담이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2022년 완주군 고산면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됐죠. 어차피 인천에서나 고산에서나 하는 일은 같을테니 3개월 정도야 '한번 살아보지 뭐' 싶었어요."
전북특별자치도는 식품 기업에 특화되어 있다. 국가 식품 클러스터, 한국식품연구원은 물론 농촌진흥천, 농업기술원 모두 도내에 있어 농업 자원을 활용한 관련 산업에 인프라와 지원이 잘 갖춰져 있다.
체류 기간은 점점 늘어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영 씨의 '메디푸드'에 대한 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음식 때문에 건강을 잃었고, 음식 덕분에 다시 회복했던 개인적 경험이 토대가 됐다.
자영 씨 자매는 '우리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 몸을 만든다'는 얘기를 믿는다. 특히 음식으로 건강을 잃었고, 다시 또 음식 덕분에 회복했던 개인적 경험이 토대가 됐다. 노컷뉴스"직장 생활을 8-9년 이어오면서 건강이 바닥을 쳤어요. 아침엔 단 음료로 기운을 끌어올리고, 점심엔 자극적인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저녁엔 치킨 같은 야식을 먹었죠. 결국 살이 20kg 정도 찌고,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나빠졌어요. 친언니가 살던 미국으로 건너가 3개월 동안 온전히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흰 쌀밥과 염분을 제한한 식단으로 식습관을 바꿨다. 그러자 몸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개선됐다.
"'우리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 몸을 만든다'는 얘기가 진짜더라고요"
완주에 정착한 자영 씨 자매는 콩을 활용한 식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소이밀크, 콩 푸딩, 후무스, 콩 마요네즈 등 다양한 제품이 진열장에 나열돼있다. 노컷뉴스
특히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하는 콩이 큰 도움을 줬다. 완주에 정착한 자영 씨 자매가 콩을 활용한 식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다.
"언니랑 '우리가 즐겨 먹고 하는 식재료로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하고 얘기해왔었거든요. 창업 아이템으로 콩을 이용한 푸딩을 내놓은 걸 시작으로 소이밀크, 후무스, 콩 마요네즈 등 다양한 제품을 하나씩 만들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완주에 오고 나서 낭비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자영 씨는 "매일 신선한 식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장 구석에 자영 씨 자매의 어린시절 사진이 놓여있다. 노컷뉴스자영 씨는 귀촌도, 창업도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때마다 든든한 조력자를 만날 수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귀촌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전북도의 농생명 산업 육성 정책들이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준 것이다.
"지역별로 특화된 강점들이 있으면 그 지역을 잘 몰랐던 청년들도 언제든 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역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사랑하고 선호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할 테니까요. 그런 이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혹시 안 맞으면 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하면서 지역이 끊임없이 순환할 수 있겠죠."
자영 씨는 완주에 온 뒤 낭비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며 활짝 웃었다. 흔히 '소멸 위기 지역'으로 거론되는 전북이지만, 외지인인 자영 씨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안겨준 고마운 장소다. 예를 들면 '매일 신선한 식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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