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 정착한 청년들. 왼쪽부터 김승희, 이자형, 김휘은 청년. 강진=최보금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강남역 가듯…맛집 갈까? 목포로 가요" 강진 사는 MZ들 ②"왜 다 서울로? 울분이 찼다" '소멸 위기'로 사업하는 청년 ③넥타이 '질끈' 서울내기가 400평 다래 농사 짓게 된 사연 ④전 세계 50곳 돌았던 그녀…서울 아닌 '완주'였던 이유 ⑤"남해의 미래요? 그냥 서울 가고 싶죠" 그럼에도 남은 이유 ⑥"인구, 늘어봤자 정치인이나 좋아…지방 소멸 대위기? 과장됐다" ⑦지방 소멸 돌파구 '여기' 있다…골목길 경제학자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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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강남역에 자주 가서 놀잖아요, 여기선 '맛집갈까?' 하고 목포로 가요. 밤바다 보고 싶으면 급 여수 가고."
서울과 전남 강진의 삶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 귀촌 5년차 이정민(34세)씨는 환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답했다.
강진에서 목포까진 약 52km. 과거 정민씨가 자주 오가던 서울 종로와 강남 간 13km에 비하면 4배다. 그런데도 이동 시간은 비슷하다.
귀촌 5년차 이정민씨는 "강진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강진=최보금 기자
"처음엔 '밥 먹으러 거기까지?' 싶었는데, 살다 보니 생활권이 강진군으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광주까지 묶이더라고요."
교통이 편리해서가 아니다. 대중교통이 부족해 자가용은 필수. 정민씨는 전남 와서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그래도 교통체증이 없어 쌩쌩 달리다보니 불편함이 없다.
"서울에선 시내 돌아다니는 데만 1시간은 걸리잖아요? 여기선 제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된 거예요."
서울 토박이, 강진으로 떠난 이유
자신이 디자인한 상품들을 보여주는 정민 씨. 강진=최보금 기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0'. 정민씨는 서울토박이다. 대학도 서울에서 나왔다. 동양화를 전공해 졸업 후 박물관과 궁궐 기념품 상품 디자인 일을 했다. 서울 중심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어쩌다 강진을 선택하게 됐을까.
"2019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회사 매출이 반토막이 난 거예요. '큰일났다, 어떡하지?' 싶었을 때 강진의 지역 자원을 활용하면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강진이 국보급 고려청자 80% 정도를 생산했던 요지거든요. 처음엔 상품을 개발하려고 잠깐 내려왔죠."
짧게 머물 계획이, 물 흐르듯 길어졌다. 사람 없는 곳인데 역설적으로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됐다. '서울에서 온 젊은 친구래' 소문이 돌면서 소개가 꼬리를 물었다. 일거리가 계속 생겼다.
"서울은 이미 많은 것들이 완성돼있어서 큰 자본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여긴 마치 백지 같아서 내가 뭐든 그릴 수 있겠더라고요."
"강진은 기회의 땅"
디자이너 이자형씨는 전통주 누룩 선생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5년전 강진에 처음 발을 디뎠다. 강진=최보금 기자이자형(30)씨도 비슷한 이유로 강진을 택했다. 술을 좋아하는 자형 씨는 전통주 누룩 선생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5년전 처음 발을 디뎠다.
"친구들과 강진을 몇번 놀러오다보니 '여기 여유롭고 좋다'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4도 3촌(4일은 도시에서 3일은 촌에서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24년 2월 아예 귀촌을 했죠."
프리랜서 디자이너라 지역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생계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처음 왔을 땐 되게 막막했죠. 뭐해서 돈 벌지? 싶었는데 막상 내려와 보니 일이 생겨요."
서울에선 경쟁 속에 묻히던 재능들이 강진에선 그의 이름과 함께 빛을 발한다.
"취미로 사진을 오래 찍어왔었는데 여기선 아무래도 사람이 없다 보니까 '너 사진 잘 찍네?'하면서 사진 찍는 일을 주세요. 서울에서는 사실 사진 작가 너무 많고, 그런 나를 알아주는게 힘들잖아요."
"불편하진 않나요?"…"안 불편해서 남았는데요?"
영상 크리에이터 김승희씨는 "서울살이가 제일 불편했다"면서 "(강진이) 딱히 불편하지 않아 남았다"고 말했다. 강진=최보금 기자시골은 도시보다 인프라가 부족하다. 특히 전남의 소멸위험지수는 전체 17개 광역시도 중 전국 1위(24년 3월 기준)다. '전국에서 소멸 위험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살기에 발생하는 불편함은 없을까.
영상 크리에이터 김승희(36)씨는 '딱히 불편하지 않아' 남았다고 말한다.
"저는 서울살이가 제일 불편했어요.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게 '서울에서 서울을 이동하는데 왜 1시간에서 2시간을 써야하지?'였어요. 도로는 너무 붐비고 주차 공간도 없잖아요. 당시 홍대에서 출퇴근 했는데, 지하철에서 부대꼈던 거 생각하면…아휴."
결정적으로 강진에 정착하게 한 건 '사람'이다.
"(서울에선) 되게 친했던 친구 집이 차로 10분 거리였거든요. 근데 1년에 한 두세번 밖에 안 보더라고요. 진짜 친해도 내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냥 다음에 보자' 해요. 근데 여기는 뭐 시도때도 없이 만나요."
청년 붙잡은 '1만원 주택'…마을도 청년도 살아난다
정민씨는 가장 도움받은 강진군 정책으로 '1만원 주택' 사업을 꼽았다. 강진=최보금 기자성취감, 자존감 또는 소속감. 각기 다른 이유로 강진에 정착한 청년들. 언제든 떠날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는 건 강진만의 특별한 정책 덕분이었다.
"빈집 리모델링 사업이요. 강진에 남아 일을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1만원 주택을 얻었어요. 거주지에 여유가 생긴다는 게 삶을 꽤 쾌적하게 하더라구요."(이정민)
강진군은 지난해 1월부터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리모델링한 빈집을 월 1만원에 임대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강진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를 통해 2024년 한 해 동안 25가구가 입주했다.
강진군 관계자는 "청년들이 오면서 마을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며, 어르신들의 그림과 글씨로 엽서를 제작해 소득을 창출하는 상생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진읍내에 위치한 청년샵. 청년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진=최보금 기자서울 사람에서 어쩌다(?) 강진 사람이 된 청년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언급한 건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지만, 그들은 더 귀한 존재가 됐다. 강진은 더 많은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다.
"서울은 밤이 예쁜데, 시골 소도시는 낮이 예뻐요. 저는 내려와서 친구들한테 둥글둥글해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요즘 삶에 지친 친구들이 많은데, 그런 친구들일수록 지방에 더 많이 내려오면 좋겠어요."(이정민)※ [어쩌다, 지방?] 청년들의 풋풋한 모습을 숏폼으로도 보러오세요. 2360km를 달린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접속하세요. 사이트 주소를 복사 붙여넣기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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