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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참사 당일 尹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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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참사 현장서 1km 거리, 車로 5분 거리
202경비단 일반 경비·대외 경비도 가능
'일반 경비' 전환 불가능했나
경찰 "투입 요청 없었다"
대통령실 "용산서장 요구 안한 때문"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류영주 기자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류영주 기자
서울 이태원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서 차량으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에도 경찰 인력이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서초구 자택에서 지내고 있다.

관저에 배치된 경력은 202경비단이다. 대통령 경호를 맡는 경찰 조직으로 관저 외곽을 지키는 임무를 맡지만, 인근에서 벌어진 대규모 인명 참사, 경력 부족 사태 등을 감안하면 아쉽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202경비단은 서울경찰청장의 직할대로 특정 지역 경비 외에도 일반 경비는 물론 지원 업무도 맡을 수 있다.

참사 당일 경찰 기동대는 용산과 광화문 집회 대응에 투입됐고, 서초동에는 집회가 없었는데도 대통령 사저가 있어 기동대가 배치됐다.

서초동은 물론 한남동 관저에도 경찰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박종민 기자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태원에서 압사로 인한 대규모 인명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는 '202경비단' 소속 3개 중대가 배치됐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2개 중대가 투입됐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1개 중대가 배치됐다. 교대 근무 형태로 한남동 대통령 관저와 상황에 따라 용산 대통령실 외곽 경비를 맡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현재 서초동 자택에 머물고 있어, 참사 당일 서초동 자택 인근에 다른 4개 기동대가 주·야간으로 배치됐다.

당일 오후 6시부터 압사 위험을 우려한 시민들의 112 신고가 빗발친 끝에 참사로 이어진 상황에도 경력 지원은 전무했다.

참사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경찰력이 부족하다며 대대적인 투입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소방은 15차례나 경찰에 요청했다. 경력 투입이 늦어진 점에 대해서 경찰은 "현재 수사와 감찰 조사 등을 통해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참사 현장 가까운데 요청 無…지휘부 제대로 역할했다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연합뉴스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연합뉴스
관저로부터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까지는 직선 거리로 1km, 차량으로는 5분 거리에 불과한 곳에 위치한 202경비단도 관저를 그대로 지켰다.

경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당일 (202경비단에) 지시가 없어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일선 경찰서나 서울경찰청의 요청이 있으면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경비단은 애초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았지만 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한남동 관저 외곽 경비 업무를 맡게 됐다. 한남동 관저는 수도방위사령부와 202경비단이 함께 경비 업무를 맡는다.

202경비단의 주 임무는 대통령 경호이지만 요청이 있으면 현장에 투입돼 지원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청의 조직 및 사무분장 규칙'을 보면 202경비단은 서울경찰청장의 직할대로 특정 지역 경비 외에도 △일반 경비와 작전업무 △경비 관련 대외 협조가 포함돼있다.

여기에다 참사 당일(29일) 윤 대통령은 서초동 자택에 머물다 30일 0시를 조금 지나 최소한의 경호 인력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 보니 202경비단을 투입할 여력이 있었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긴급한 경우엔 202경비단이 먼저 현장을 가고, 이후 기동대가 오면 임무 교대를 할 수 있었다"며 "근무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대기자를 빨리 보내거나 누군가 지시를 하면 되는데 (당일)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발생 직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며 투입할 경찰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투입할 수 있는 경찰 병력이 대거 있었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남동 관저를 지키고 있던 202경비단 외에도 윤 대통령의 서초구 자택 인근에 있던 4개 기동대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도 기동대 다수가 있었다.

참사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곳곳에 있던 경찰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하지 못한 데다, 용산경찰서장→서울경찰청장→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지휘 체계까지 무너지며 대응 자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경비단 지휘 책임이 있는 서울청장은 당일 밤 11시 36분에 참사 발생을 처음 인지했고, 다음날 0시 2분에야 경찰청에 보고했다.

특히 참사 발생 이후에도 한동안 혼잡 상태가 이어지며 구급차 등의 진입이 어려워 구조가 늦어진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뒤늦은 인력 투입은 뼈아픈 대목이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당시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202경비단도 몰랐을 것"이라며 "지휘부가 상황 판단이 빨라 지원을 지시했다면 투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202경비단 투입 문제는) 용산 이전과는 무관하다"며 "용산서장이 요구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2022년 11월 5일자 「[단독]참사 당일 '빈 집'인 尹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나」 제목의 기사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대통령 관저에 일반 경비 등도 맡을 수 있는 202경비단 인력 약 200명이 대기 중이었지만 '빈 집'인 대통령 관저 경비를 이유로 사고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관저 경비에 투입된 인원은 200명이 아니라 00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 관저는 경호보안이 필요한 국가보안시설이자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서 위협 상황에 대비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등 '빈 집'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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