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 눈 뜨고 지켜봤는데 민간인 학살 왜곡 축소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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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5·18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2주년을 맞았다. 지난 1980년 5·18 기간에 국가폭력에 의해 사망한 희생자는 167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5·18 당시 사망한 민간인들이 속속 확인되면서 추가 조사가 진행될수록 민간인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지난 2년 여 년간의 조사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광주CBS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는 5·18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연속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11일은 세 번째 순서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건인 송암동효천역 일원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보도한다.

[계엄군 만행 속속 드러나는 5·18 민간인 학살 그날의 진실]
송암동효천역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 더 있다
외곽 봉쇄 작전 투입 계엄군 시민들 향해 무차별 발포
군 공식 발표 사망자 3명 조사 결과 16명 사망, 17명 부상
연구팀, 검시조서 등 문헌조사서 피해자 추가
송암동효천역 사건 철저한 고증 및 진상규명 필요

▶ 글 싣는 순서
①핏빛으로 물들고 고문 소리 진동한 1980년 5월 전남대 캠퍼스의 진실
②'5·18 민간인 학살 추가 사망자 확인' 국군통합병원 확보 작전 진실은?
③"우리가 두 눈 뜨고 지켜봤는데 민간인 학살 왜곡 축소하다니"
(계속)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 남구 송암동 효천역 인근 도로변에 버스가 넘어져 있다. 5·18 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 남구 송암동 효천역 인근 도로변에 버스가 넘어져 있다. 5·18 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 남구 송암동 남선연탄 앞 도로.

도로를 봉쇄한 계엄군이 시위대가 탄 고속버스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 이로 인해 나주에서 광주 방향으로 향하던 버스를 운전한 강복원씨가 현장에서 숨졌다.

이날 외곽지역 봉쇄 작업인 광주-목포 도로 차단 작전에 투입된 제20사단은 송암동효천역 일대에서 총격을 가해 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동호 전문위원은 "송암동효천역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전형적인 민간인 학살이다"면서 "민간인과 차량에 무차별 사격했고 이 발포로 5월의 진실을 알리려던 많은 시민이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제20사단의 전투상보에는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군의 발포로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축소 기록돼 있다.

군 당국은 오히려 민간인 학살을 전투 성과로 기록했다.

5·18기념재단 이재의 연구위원은 "군 당국은 뚜렷하게 드러난 것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피해를 기록하지 않았다"며 "이들은 희생자 규모를 줄이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기록에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광주 남구청이 최근 조선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 이 기간 사망자가 6명으로 늘어났다.

1995년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 보고서. 5·18 기념재단 제공1995년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 보고서. 5·18 기념재단 제공5월 24일의 경우 군 기록에는 사망자가 없었고 이후 1995년 검찰 수사에서 7명으로 집계됐지만 19살 남성과 4살 남자아이 등 3명 이상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팀은 검시조서 등을 토대로 21일과 22일 24일 송암동효천역 일원에서 모두 16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했다.

사망자를 일별로 살펴보면 21일 4명, 22일 2명, 24일 10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21일 2명, 22일 4명, 23일 1명, 24일 10명이 상처를 입었다.

11공수여단은 24일 광주지역 병력조정 배치로 광주 지원동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던 도중 무차별 발포해 시민들이 사망했다.

5·18 당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5·18 당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송암동효천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희생자 수가 20명 이상으로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4일 계엄군은 마을 청년 3명을 집에서 끌어내 총격을 가하고 길 가던 주민 박모(51·여)씨를 끝까지 쫓아가 사살했다.

당시 총상을 입은 노득기씨의 아내 박종단씨는 "24일 어디서 신호가 탕하고 들리더니 갑자기 차량에 있던 군인들이 막 총을 쐈다"면서 "모내기 철만 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2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은 만큼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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