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 중국 외교부 제공"러시아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왕이 부장과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전화 통화가 이뤄진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안보우려를 이해한다'는 그의 발언은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이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경위가 있고, 오늘날의 상황은 각종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힌 이후에 공개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실제 침공했을 때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는데 침공 직전과 직후의 모호함을 걷어내고 러시아 쪽으로 기운 것으로 이해된다.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이전인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짙어진 올림픽 후반부 부터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동시에 발신해 관계가 모두 괜찮은 러·우 두 나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중국의 중립적 입장을 취하리라는 관측은 대만 문제와도 연관지어 분석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워 대만 독립과 대만 문제에 미국 등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부장이 라브로프 장관과 통화에서 "중국은 일관해서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는 입장도 밝히긴 했지만 러시아에 힘을 실어준 것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기-승-전-결을 이미 꿰뚫고 있는데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이 군사적 개입 가능성에 선을 긋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2014년 크림반도 점령이나 2008년 조지아 침공 때처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서방이 초강력 제재를 공언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이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경우 중-러 관계는 한층 강력해질 수 있고 이는 미중 대립구도 심화 속에서 러시아를 강력한 우군으로 둘 수 있게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이 여기에 대응하는 모습은 무력에 의한 대만통일 시나리오를 공공연히 흘리는 중국에게 더없는 교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