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노태우 전 대통령 엇갈린 평가 속 '국가장'으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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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5일간 국가장'…김부겸 국무총리가 장례위원장
정부"역사적 과오 있으나 직선 대통령 · 북방정책 공헌"
국립묘지 안장은 불가…전두환 전 대통령 선례 될 듯
대통령 선거 앞두고 '예송논쟁' 가열 차단 정무적 판단
아들 노재헌씨 유언 공개 "5.18에 대한 책임과 용서 구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27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27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정해졌다.
 
정부는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닷새간 국가장으로 결정하고 김부겸 국무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결식과 안장식은 오는 30일 거행되며 국가장 기간 동안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은 국기를 조기로 게양해야 한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지만,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했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국립묘지 안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형법상 내란죄 등의 혐의로 퇴임 후 실형을 선고 받은 경우 국립묘지 안장에서 제외하고 있다.
 
27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27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사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국립묘지 안장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전직 대통령이고 특별사면을 받았으니까 가능하다는 입장과 내란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하다는 주장이 맞서기도 했다.
 
다행이 유족측이 먼저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대통령 재임 시 조성한 파주 통일동산을 장지로 언급했고, 정부도 관련 법령을 근거로 '불가'입장을 명확히 해 논란은 일단락 될 전망이다.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 여부가 관심인 것은 이 문제가 단지 고인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선례가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가장 결정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밝혔듯이 내란죄로 확정 판결을 받는 등 고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가차원의 예우를 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5.18 희생자 단체 등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고심 끝에 국가장을 결정한 것은 다분히 정무적 판단으로 보인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4개월 여 앞둔 상황에서 고인의 장례 문제가 마치 조선시대 극심했던 '예송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조치다.
 
국가장으로 하지 않을 경우 극우 보수층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고인의 업적만을 내세워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을 정략적으로 키울 수 있다.
 
국립묘지 안장 불가 결정 역시 현행 법령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유족의 입장이 먼저 나오지 않았다면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논쟁거리로 불거질 소지가 다분하다.
 
고인의 장례를 둘러싼 큰 논쟁거리는 정리됐으나 닷새간 치러질 장례에서 얘기치 못한 일이 불거질 지는 두고 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우리 현대사에 이름을 알린 것은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다.
 
쿠데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한 뒤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쳤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해 '6.29 선언'과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직선 대통령에 선출됐다.
 
연합뉴스연합뉴스재임기간 88서울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하고 북방외교에 힘을 쏟아 소련·중국과 공식 수교에 성공해 외교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퇴임이후 드러난 수천억 원의 비자금 사건과 12.12&5.18 재판으로 수감생활을 해야 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잦은 병환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오랜 투병생활을 해 왔다.
 
이 때문에 흔히들 고인에 대해 '영욕의 세월'을 겪었다는 표현을 쓴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동기생이자 전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하면 국민적 비난이나 질타를 덜 받았다.
 
이는 고인이 직접은 아니지만 말년에 아들 노재헌 변호사를 통해 광주묘역을 참배하게 하는 등 나름 자신의 과오에 대해 뉘우치는 모습 등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인 노씨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도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밝혔다.
 
노씨는 이 자리에서 "특히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 그 이후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여러 일에 대해서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물론 5.18기념재단 등은 노 전 대통령이 5.18 발포의 책임을 가릴 핵심 인물이었지만 끝내 본인의 직접 사죄나 증언, 기록물을 남기지 않아 안타깝고 분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몫이지 가해자의 뉘우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본 것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재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의 전신) 417호 대법정에서다.
 
1995년 말 '비자금'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이 구속 기소된 것을 계기로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필자의 출입처가 경찰청에서 법조로 바뀌면서 고인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수개월 이어진 당시 재판 과정에서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꼬박꼬박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옅은 하늘색 수의 차림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편에 앉아있던 백발의 뒷모습과 법정을 드나들 때의 옆모습이 주로 떠오른다.
 
가끔씩은 누구를 찾는지 법정을 둘러보거나 길고 지루한 재판 때문인지 깜빡 깜빡 고개를 떨구던 모습도 생각난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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