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조은수(전소니)와 조희수(이유미)가 희수의 남편 노진표(장승조) 살인을 결심하는 내용을 다룬다. 넷플릭스 제공마지막 장면들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떠올리며 만든 신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를 연출한 이정림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만났던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떠올렸다.
"생존자분들이 탈출한 뒤에도 밖에 나가면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고, 피부가 간지럽거나 바람만 불어도 몸이 아프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품 속 조희수(이유미)도 그랬을 것"이라며 "당장 날씨가 춥든 덥든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설정했고 이후에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담겼으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이 조희수와 조은수(전소니)를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어떤 일을 겪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작품 곳곳에는 해방감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바다'가 배치됐다.
이 감독은 "바다는 조은수가 죽을 뻔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결국 파도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상징적인 장소"라며 "조희수와 조은수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조희수의 집 다용도실에 바다 커튼이 있고, 조은수의 집에도 바다 그림과 벽지가 있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제공또, 가정폭력을 다룬 작품인 만큼 2차 가해 방지에 각별히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진표(장승조)가 죽어 마땅하다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관련 강의를 들으며 표현 방식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직접 신체가 맞닿는 장면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대신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시계 소리를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이 감독은 "프라이머리 음악감독님의 제안이었다. 조희수의 집은 차갑고 답답한 '진공 상태'같은데 그 안에서 희수에게 압박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며 "조은수의 강릉 집에도 따각따각하는 소리로 공백을 찌르고 싶었고 진소백 사업장의 시계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마작패 그림 의미는…이무생, 아빠처럼 두 딸 챙겨"
'당신이 죽였다'는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를 원작으로 한다. 이정림 감독은 이전부터 이 작품을 읽었고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좋아해 영상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꼭 연출을 맡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넷플릭스 제공작품 곳곳에는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반영되기도 했다. 특히 극 중 진강상회 대표 진소백 역의 이무생은 앞서 알려진 꿀밤 연기 외에도 다양한 제안을 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마작패를 손안에서 다루다가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도 이무생의 아이디어였다.
"마작패 설정 자체는 대본에 있었지만, 이무생 배우가 하나는 조은수, 다른 하나는 조희수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회에 차량에 걸려있는 마작패도 두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라 항상 곁에 두고 다닐 것 같다고 제안을 줬죠."
그는 "그래서 이들을 항상 걱정하는 사람처럼 마작패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아빠처럼 두 딸들을 챙겼다"고 말했다.
매회 달라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조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이 감독은 "작품 속 스노우볼이 중요한 매개체인데 너무 길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 같아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설정했다"며 "일부러 자연스럽지 않고 그래픽적인 느낌을 줘 인물들의 삐그덕 거리는 삶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제공이 감독은 극을 이끈 이유미와 전소니의 섭외 과정도 전했다.
그는 "이유미 배우는 데뷔 때부터 다양한 작품을 소화해 뭐든 다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며 "조희수가 수동적이고 당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은수를 위해 진짜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소니 배우는 쓰담쓰담하고 싶은 얼굴이 있는데 실제로 만나보면 단단한 면이 있더라"며 "두 배우가 다르게 생겼는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 함께 두면 자매처럼 보였다"고 웃었다.
경찰대 출신의 노진영 역의 이호정에 대해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2023)'을 재미있게 봤다"며 "무표정하게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하는 묘한 얼굴이라 제가 상상한 노진영과 가장 가까웠다. 한 번 만나자마자 바로 결정했다"고 떠올렸다.
"가정폭력, 사회적 문제로 인식돼야…작은 관심이 큰 변화 만들죠"
이정림 감독은 조은수와 조희수가 사탕을 먹는 장면과 관련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최대한 담아내려 했다"며 "순간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이 감독은 작품 공개 후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그는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으시는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며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지금 막 8부를 봤다며 너무 슬프다'고 우시면서 말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와도 식사하는 데 새벽에 보시고 눈이 그렁그렁하셨다고 하더라. 70대에게도 괜찮았나 싶었다"며 "조금 새가슴이어서 온라인 반응을 살펴보지 않은데 가족의 반응을 보니 기뻤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설명했다. 그는 이 작품이 성별의 문제가 아닌 "가해자와 생존자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가정폭력이 사생활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됐으면 해요. 작품 속 아랫집 인물처럼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어 "작품을 통해 방관에 대해 조금씩 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관심들이 모여야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조은수와 조희수의 행복도 볼 수도 있으니 그런 점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당신이 죽였다'는 공개 3일 만에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22개국 톱10에 진입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