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이재명-트럼프 대통령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미투자 약속액이 5천억 달러로 늘어났고 그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기 위한 비책으로 내놨던 마스가(MASGA)는 25일(미국시간) 개최된 한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체결된 한미 기업간 양해각서를 통해 협력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됐다.
조선과 원자력 LNG등 5개 산업분야에서 11건의 계약과 MOU를 체결했고, 이 가운데는 마스가와 관련된 공동투자펀드 조성 MOU(수십억 달러), 삼성중공업-비거마린그룹의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미국내 조선소 현대화, 선박공동건조 등 향후 추진될 마스가의 밑그림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연설에서 "제조업, 조선업 분야의 경우 한국은 미국의 최적의 파트너이자 유일한 파트너"라는 자신감을 보이며 "미국의 조선업이 누렸던 영광을 회복해 군사력 강화까지 이룰 수 있도록 마스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농산물시장의 추가개방을 막고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끌어내리는 효자노릇을 한 마스가는 미국의 필요를 알아챈 한국이 선제적으로 던진 프로젝트로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개세션에서 "미국은 조선업이 상당히 쇠퇴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구매해야 한다. 한국과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바라고 조선업을 부흥시키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연합뉴스조선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해 나간다고 우리기업이 그 대가로 무엇을 얻게될 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긴 어렵다. 조선투자가 하루 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수십년에 걸쳐 진행될 사업이므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내내 투자처와 집행, 이윤분배방식에 대한 협상이 오가면서 보다 구체화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을 비롯한 우리의 여러 비교우위 산업 분야에 대한 한국기업의 투자가 해당기업에는 이윤창출과 시장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삼성중공업이나 한화오션이 MRO계약이나 필리조선소 현대화에 나선 건 돈벌이가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미국방부와 해군 예산자료 등에 따르면, 2025년부터 10년동안 미군의 함정유지보수 예산규모는 매년 162억~218억달러, 관련 부품조달 규모는 30~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돈으로 매년 30조원에 이르는 규모의 신시장이 열리는 것과 같다. 10년이면 300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한국이 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미국의 조선산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노후한 미군 함정사업에서 이익을 낼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1500억달러를 기존 3500억달러와 별도로 추가 직접투자하기로 한 것 역시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의 공동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 많은 돈을 협소한 국내시장에 쏟아부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직접투자를 통해 미국의 상호관세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고 구매력이 강력한 미국 본토 외에도 세계시장을 겨냥해 투자의 수익을 확대해 나갈 여지는 얼마든 지 열려있다.
한국기업의 대규모 대미직접투자는 한국경제 패러다임 대전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바꿔 놓은 글로벌 교역질서를 도외시한 채 기존의 수출드라이브만 고수하긴 세계경제질서가 너무도 급격히 많이 바뀌어 버렸다.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국익을 내세웠다. 사실, 1500억달러 추가 투자나 알래스카산 LNG사업 참여 내지 구매,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 등은 하나같이 우리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불리한 약속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반대의 측면도 생각해 봐야 한다.
1500억달러 투자는 기업 이윤창출의 마중물이고 미국산 LNG는 수입선을 바꾸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미국산 첨단무기구입은 결국 우리돈으로 국방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므로 생존을 위한 투자다. 세계 경제10대 강국에 걸맞게 국방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방위비 압박을 예상해 선제적으로 미국산 무기구입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전략과 준비의 승리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를 추켜세우거나 북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요청해 트럼프의 환심을 산 것,비서실장 간 핫라인 가동, 일본을 먼저 방문해 현안을 조율함으로써 미국을 안심시킨 일 등은 대통령실이 미국과의 회담을 어떤 자세로 준비했는 지 짐작케 한다.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직후 "이번 회담이 당초 계획했던 경제.동맹.신분야 개척 등 3가지 영역에서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둔 회담"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각론에서 비합의 상태로 남은 이슈들이 어떤 돌발변수로 작용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회담성과를 예단하긴 이르지만 회담과정에서 양국간 긴장이나 오해가 생긴 흔적은 없어 보인다. '위대한 지도자'라고 이재명 대통령을 추켜세운 트럼프의 말은 정상간의 레토릭이지만 상대에 대한 긍정마인드가 없는데 굳이 이런 말까지 꺼낼 이유가 있을까? 파트너 또는 협상내용에 대한 만족감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첫 회담의 득과실을 따지긴 이르다 하더라도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와의 첫대면회담을 비교적 무난하게 치러낸 건 트럼프 잔여임기 동안 대미관계의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