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키아프 서울에서 샘터 화랑이 선보일 박서보 화백의 작품. 한국화랑협회 제공어느새 귀뚜라미가 울고 뭉게구름이 둥실 뜬다는 처서(處暑)가 됐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곧 9월이 오고 흰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가 되면 가을을 기대해도 좋을까? 그래도 서울만은 미술로 도심(都心)을 물들이며 풍성한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매년 9월 첫째 주는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 주간이다. 스위스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와 한국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Kiaf)가 같이 열리는 것이다. 올해는 네 번째로 다음달 3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나란히 막을 올린다.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의 A급 아트페어로 인정받고 있는 프리즈 서울은 올해도 30개국 120개 이상 갤러리가 참여하며 다음달 6일까지 열린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 서울은 '공진(共振)'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다음달 7일까지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와 함께 한다.
프리즈‧키아프 서울은 성공적인 흥행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지만 올해는 마냥 설렐 수 만은 없는 여건이다. 지난달 폐막한 론 뮤익 회고전을 50만 명 넘게 찾는 등 미술 관람 열기가 뜨거운 것과는 상반된 기류이다.
프리즈 서울 패트릭 리 디렉터는 "관람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게 매우 고무적"이라며 "앞으로 더욱 견고하게 아시아 허브로서 입지를 다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아트페어의 본질인 작품 거래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키아프 운영위원장인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참여 갤러리 수를 줄여 양적 확장보다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혀진다.
2025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에서 소개될 페르난도 보테로의 '두 친구'. 아트오브더월드 제공팬데믹이 끝나고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세계 미술 시장은 글로벌 경제 불안과 경기 둔화, 정치 불안 등으로 긴 불황의 터널을 걷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9개 국내 주요 경매사의 총 낙찰액은 약 1135억원으로 전년보다 25.2%나 감소했다. 10억원 이상 고가 작품 거래도 전년의 17점에서 5점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낙찰 총액이 55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 감소했고, 10억 이상 낙찰 작품은 이우환의 '다이얼로그'(2019) 단 한 점에 그쳤다.
해외 경매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의 올 상반기 낙찰 총액은 39억8000만달러(5조5600억원)로 6.2% 감소했다. 2016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 2023년 급락의 충격에서 3년째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뉴욕에서는 지난 1년 동안 78년 전통의 말보로 갤러리 등 20여 곳의 갤러리가 폐업했다. 서울에 진출했던 해외 갤러리들도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프리즈 서울 역시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작품들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지난해 9월 열린 키아프 서울. 한국화랑협회 제공출구는 보이지 않는데 정부가 추진 중인 관련 제도 개정은 미술 시장을 오히려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술품 재판매 시 작가가 매도인에게 판매 차익의 일정 비율을 청구하는 작가 보상금제, 자유업인 화랑업과 미술품 경매업 등 미술 서비스업의 신고제 전환이 대표적이다. 미술계는 미술 시장을 왜곡시켜 침체를 가중시킬 것이라며 심각한 표정이다.
현재 미술 시장은 단순 침체를 넘어 구조적 격변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시그널들이 나오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올지, 새로운 기회가 열릴지 미술계는 긴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키아프리즈'가 아시아 허브로서 미술 시장에 한 줄기 신선한 가을 바람을 선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