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와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글로벌 질서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기세가 더욱 거칠어 지고 있다. 쟁기로 땅을 갈아엎 듯 하는 거침없는 룰브레이킹의 파장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다. 보편의 룰로 지켜졌던 기존의 세계질서는 소리없이 역사속으로 퇴장하고 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라고 포장하지만 미국이 양자.다자협상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가깝다. 정부 간에 맺어진 조약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지만 누구 하나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 한국도 일본도 필리핀도 백악관 트럼프 책상에 불려나가 판결을 선고받듯 관세율과 투자액을 할당받고 어떻게 하면 미세하게 세율을 떨어트릴까에 매달리는게 전부였다.
올들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트럼프의 미국중심주의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방적이고 광포하다. 미국중심주의 앞에 예외는 없다. 고율관세에 발목잡힌 기업들은 시장을 잃을까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배제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대미협상에서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 조성, 미국산 에너지 1000억 달러 구매 등의 선물보따리를 푼 대가로 15%관세율을 배당 받았다. 만년 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미국과의 무역협상 외에도 양국 사이에는 한미일 동맹강화와 대중국 견제, 국방비 증액문제, 북핵 등 민감한 현안이 즐비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국민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호혜적인 외교안보정책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해법도 찾을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이 대통령에게는 이번 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이 5년 나라경영의 초석을 놓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
연합뉴스지금까지 보여온 트럼프의 협상방식을 볼 때 어디에서 어떤 돌발적인 변수가 불거질 지 어떤 요구를 들고 나올지 예측이 쉽지 않다.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를 상대로 미국의 입맛도 맞춰주면서 우리 국익을 지켜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방비 증액이나 미중 기술패권경쟁에서 한국의 명확한 입장 요구 등은 이번 정상회담 의제 가운데서도 가장 핫한 이슈로 분류된다.
방위비 증액은 미국측이 그동안 계속 거론해 온 문제라 오히려 대응이 수월할 수 있지만 정상회담 직전 불거져 나온 반도체 보조금을 매개로 한 특정기업 지분요구, 뜨거운 감자인 한중 관계 등과 같은 예상이 어렵고 명확한 입장표명이 불가한 이슈가 복병으로 작용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미국우선주의 외에도 어느 때보다 희미해진 정상간 회담의 프로토콜까지 감안할 때 이재명 대통령의 4강외교 데뷔전은 역대 어떤 한미회담보다 난해하고도 까다로워 치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요구에도 협상테이블 위에 내놓을 풍부한 선택지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각국 정상들을 손쉽게 다루는 트럼프식 협상술에 대응하면서 국익을 지켜낼 방안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사안별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한미협상은 제로섬게임이면서도 호혜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단일 주제에 대한 시한없는 토론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수많은 난제를 정리하는 어려운 협상이다. 그래서 더욱 유연한 대처가 필수적이다.
얼마전 트럼프와 정전협상으로 머리를 맞댄 젤렌스키 처럼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장의 카드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 안보와 시장을 미국에 기대고 산다. 그래서 협상이 틀어지거나 얼그러지면 잃을 게 너무 많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밖에 없는 회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