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무력 충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주요 연료 운송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유가 급등 등 산업계 전반의 타격이 예상되는데,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업계와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방안을 마련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美 최후통첩에도 충돌은 격화…中 사실상 뒷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무조건 항복을 압박하며 최후통첩성 경고를 하고 나섰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일(현지시간) 오전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아라크의 핵시설을 공격했다. 이란도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의 소로카 병원 등을 타격하며 반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몇 주 전만 해도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협상 등 외교적 해결책에 무게를 두는듯 했던 미국은 양국의 충돌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자, 최근 군사 행동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수일 내로 이란에 대한 공격에 나서게 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중국은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이 무력 개입을 저울질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현지 언론의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이란 전쟁 장기화, 韓 중동 수출에 타격"
연합뉴스이렇듯 양국의 무력 충돌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산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스라엘 등 현지에서 근무중인 주재원 등 파견 인력 전원을 일찌감치 요르단 등으로 철수·대피 시킨 상태다.
특히 사태를 가장 면밀하게 주시하는 곳은 석유를 원료로 하는 정유·석유화학 업계다. 중동정세 불안에 따라 5월30일 배럴당 63.9달러였던 국제유가(브렌트유)는 18일 기준 76.7달러까지 20% 이상 상승하는 등 국제 유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대한석유협회 조상범 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 관세 정책과 국제 경기 둔화 속 석유 수요도 둔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가가 급등하면 석유 수요 심리가 위축되면서 업계의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수출 중심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료 및 제품에 대한 물류비 비중이 크고, 에너지 집약적인 철강 업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때 물류비 상승으로 실적에 타격을 받았던 가전 업계 등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동 직접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이스라엘, 이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인접국 수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최소 10%에서 최대 140배까지 늘었는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런 수출 회복세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코트라는 전망했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 가능성 낮지만 해운 운임 이미 꿈틀
산업계는 유가 움직임과 더불어 호르무즈 해협 항로 폐쇄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 하는 모양새다.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 회원국의 증산 여력과 미국 전략 비축유 반출 등으로 일정 부분 완충 가능성이 있지만 물류는 이런 대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35%, 액화천연가스(LNG)의 33%가 통과하는 주요 연료 수송 항로 중 하나인데, 이란은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해협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현재 미국 함대가 주둔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 폐쇄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는 경우 유가가 폭등할 수 있고, 이란의 유조선 공격 등 위험 요인으로 선박의 항로 우회가 지속되면 해상 운임 인상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영국 조선·해운 분석 업체인 클락슨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걸프 지역에서 중국으로 운항하는 원유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의 운임은 이스라엘의 공격 개시 이틀 전인 지난 11일 1만 9998달러에서 18일 4만 7609달러로 두배 이상 뛰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서울 종로구 석탄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대한석유협회, 한국석유유통협회, SK에너지, GS칼텍스를 비롯한 석유·가스 관련 유관기관 및 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스라엘 이란 공습 이후 중동지역 긴장 심화에 따라 석유·가스 수급 비상대응태세 및 석유시장을 점검'하기 위해 '중동 상황 관련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 점검회의'를 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중동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정부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석탄회관에서 정유·주유소 업계 및 유관기관과 회의를 열고 석유·가스 수급 비상대응태세와 석유가격 상황을 점검했다.
산업부는 현재까지 국내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도입에는 차질이 없는 상황이지만, 상황 변화에 따른 수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만큼 호르무즈해협 운항 차질 등을 상정한 비상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와 업계는 현재 약 200일간 지속 가능한 비축유(IEA 기준)와 법정 비축의무량을 상회하는 충분한 가스 재고분을 통해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다. 향후 위기 발생시 단계별 대응 매뉴얼에 따라 필요한 대응조치를 신속하게 검토해나갈 방침이다.
산업부 윤창현 자원산업정책국장은 "중동 지역의 불안이 국내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