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65)씨와 동명의 응우옌 티 탄(67)씨. 김광일 기자베트남전쟁 때 민간인 학살을 경험했던 생존자들이 19일 한국 국회를 방문해 이 사건 진상을 밝힐 관련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생존자 응우옌 티 탄(65)씨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앞서 탄씨가 사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마을에서는 지난 1968년 1월 12일 주민 7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주월 미군사령부와 베트남 당국 등은 이날 마을을 지났던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가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8세였던 탄씨 역시 친구 5명과 마당에서 놀다 총성을 듣고 작은 동굴에 숨었지만 곧바로 발각돼 총상을 입었다. 그 뒤 창자를 부여잡고 도망쳐 미군에 구조된 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국회에 선 탄씨는 "저는 6년째 한국 법원에서 국가배상소송 투쟁을 하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며 "베트남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국회에서는 베트남전 진실규명을 위한 법안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한국의 새 대통령과 함께 시작된 새 정부, 그리고 국회가 부디 베트남 피해자의 요구에 평화로 응답해달라"고 강조했다.
같은 이름의 또다른 생존자 응우옌 티 탄(67)씨는 열 살배기 때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한국군이 마을로 진입했을 때 넓이 3m, 길이 15m의 방공호에 숨었다가 별안간 날아든 수류탄에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고 한다.탄씨는 "우리는 한국에 올 때마다 참전군인들과 한국 정부의 사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우리 요구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불행한 세상을 우리 손주들에게 물려줘야만 할까"라고 물었다.
이 사건 관련 정부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를 포함한 관련법 대표발의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준비하고 있다.
민 의원은 기자회견 뒤 취재진과 만나 "진상에 관련된 여러 사안 중 최종적으로 어디까지 포함시킬 것인가 조율중"이라며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 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없을 것으로 보고 국회에서 제정이 되면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관건은 법안의 통과 여부다. 20대 국회에선 정의당 김종대 의원 등 12명, 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강민정 의원 등 25명이 대표발의했으나 해당 법안들은 각각 법사위에 상정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만 법안을 추진하는 민 의원과 시민사회단체는 22대 국회에선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TF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1심과 2심 사법부의 진전된 판단이 있었고 항소심 판결 뒤 베트남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실질적 회복 조치를 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입법에 대한 동조가 더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안 내용도 기존에는 민간인학살, 성폭력 문제 등 베트남인에 대한 피해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에 더해 기존의 법 제도 안에서 인정되지 못했던 한국의 참전군의 고통과 후유증까지 포괄했기 때문에 비판 여론에도 조금 더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민변 김남주 변호사는 "법을 제정할 때 정부 부처 의견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며 "21대 국회 관련법 발의 때 이재명 당시 의원도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정부도 아마 기존과는 다른 태도로 입법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