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위안부' 소재, 男 액션물처럼 흔해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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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②] "할머니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반일' 아닌 '반전'"
"할머니들 세상 떠나도 '위안부' 문제는 박물관 아닌 광장에 나와야"
"젠더 넘어서서 무관하게 형성되는 연출의 영역 분명히 있어"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이 22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민규동 감독이 무엇보다 경계하는 것은 '위안부'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허스토리'를 '반일 영화'로 보는 시선이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소송을 낸 실화를 담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단순히 '반일 영화'가 되기는 어렵다. 실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은 일본에 대한 응징과 징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다시는 자신이 겪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한 투쟁을 이어왔다.

"할머니들이 목놓아 외치는 것은 일본을 꺾자는 것이 아닙니다. 반일이 아니라 반전의 메시지가 핵심이에요. 전쟁에서 이중고를 겪는 여성이나 어린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겪은 일이 어떤 일이었고,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응징과 징발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건 '한풀이'의 영역에만 머물겠죠. 그러나 그걸 포함하되, 결국 더 확장된 평화의 메시지가 중요한 거예요. 사실 일본 사죄의 맥락은 이 같은 전쟁 범죄 재발을 막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개념이거든요. 하지만 요원합니다. 일단 현재 일본 정부 권력의 지지대가 전쟁 속에서 생겨난 거라서요."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역사로 끊임없이 숨쉬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과거의 사건으로 박제할 것이 아니라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이야기가 과거가 돼버리고, 할머니들이 박물관의 인물로 남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허스토리'라는 제목에 물론 여성들의 이야기와 역사라는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현재와의 상호 교감 속에 역사가 형성되는가를 담아내려는 생각도 있었어요. 문제를 풀어가는 우리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서 매 순간 역사가 형성된다는 거죠. 사실 수요집회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도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지지하고 응원하잖아요. 이런 문화 콘텐츠 속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면 그게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해요. 광장에 내놓아야 되는데 박물관에 가두면 점점 사라지죠.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소재 영화가 마치 많은 남성 위주의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들처럼 표준값이 될 수 있게 많이 만들어져야 해요."

영화 '허스토리' 현장 스틸컷. (사진=NEW 제공)

 

작품을 준비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남성이기에 겪었던 어려운 순간은 없었을까. 민규동 감독은 여성들의 아픔이나 고통은 같은 여성이 더 온전하게 공감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젠더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연출의 영역 또한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영화에 발을 들여놓기 전, 여성인 변영주 감독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것이 결국 '허스토리'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남자인 제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영화가 되면 퇴보할 수도 있어서 스스로 경계를 많이 했고요. 사실 할머니들과 성별이 같은 여성들이 그 아픔에 대한 공감도가 훨씬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 거리감이 생기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거리를 두고 볼 수 없어 오히려 들여다보기 어렵고, 힘든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여성이든 남성이든 젠더를 넘어서서 무관하게 형성되는 연출의 영역이 있거든요. 그 함수 관계를 획일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잘 몰라서 섣불리 욕심낸 게 아니었나 생각할 때도 많았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1995년도에 변영주 감독님의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봤고, 제게는 변영주 감독님이 큰 길을 터주신 셈이죠. 당시 감독님의 제작 과정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감독님이 해내시는구나' 하고 감탄했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제가 영화로 만드는 건 아주 먼 이야기였어요."

감독의 재량보다 배우들의 역할이 컸던 영화. 민규동 감독은 그래서 '허스토리'의 배우들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었던 지점들을 공감하고 있었다.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의 배우 김희애, '위안부' 할머니 배정길 역의 배우 김해숙과는 이번 영화 내내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실존인물이라는 점까지 포함해서 그 무게감이 소화해내기 쉬운 영역이 아니었죠. 자기 학대가 심했고, 정신적으로 아마 많이 괴로웠으리라 생각해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이 사실 보기 좋았어요. 배우로서 편안하게, 기술적으로 갈 수도 있었을텐데 진심으로 그 분들을 바라보려는 자세였거든요. 그건 배우 이전의 마음이라 압박한다고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요. 김해숙 선생님은 너무 캐릭터에 깊게 들어가셔서 거의 6개월 동안 우울증 비슷하게 있었던 걸로 알아요. 김희애 씨는 제가 현장성을 많이 중요하게 생각해서 대본 리딩부터 사전 리허설까지 정말 집요하게 동선을 보고, 교정하고 그랬어요. 아마 신인 배우가 된 것 같은 그런 심정으로 하셨겠지만, 김희애 씨가 여태까지 저만큼 캐릭터에 애정을 쏟는 감독을 만나질 못했던 거죠. (웃음) 본인이 소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까지 극단적으로 변화해서 어느 때보다 힘든 촬영이었고, 아픈 성장통이었을 거예요. 아마 그 변화에 대한 갈망이 없었다면 제 숙제가 억압이었을텐데 중간에 절대 포기를 안 하시더라고요."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이 22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민규동 감독이 '허스토리'를 들고 나온 것이 의외의 선택이라는 시선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이름을 알렸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한국형 옴니버스 영화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로 일본 만화를 영화화하기도 했고, 전대미문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투입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3편까지 이끌어 가면서 사극 '간신'에 도전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성공과 실패를 떠나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의 소유자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허스토리'는 의외성을 가진, 가장 민규동 감독다운 영화다.

"평생 완성하려다 끝나는 미완성의 완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첫 영화가 '여고괴담' 시리즈였는데 학창시절 저를 아는 사람은 무슨 이런 영화로 데뷔를 하느냐고 그러기도 했어요. 전편의 기대치와 다르게 이상한 영화들을 많이 찍어서 배반의 역사를 쓰기도 했죠. 굳이 왜 이런 영화를 찍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이번에는 스타일을 완전히 숨기고, 제 자의식까지 숨겼는데 어쩔 때는 3800컷이 날아다니는 영화를 하기도 해요. 스타일은 사실 하려는 이야기에 따라서 매번 손님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추는 가운데에 있는데 중심을 잡으려고 좌충우돌하는 그 불균형의 긴장감이 제게 동력이 되고, 변주를 시도하게 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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