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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끼어든 삶의 웃픈 '아이러니'…'럭키 데이 인 파리'[최영주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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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감독 우디 앨런)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100분의 1'이라는 확률에서 '1'이 당장 일어날지 아니면 평생 일어나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게 운이고, 운은 우연히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는다. 막장 로맨스 위에 우디 앨런 감독의 손길이 더해지며 블랙 코미디가 된 '럭키 데이 인 파리'는 인생은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우리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아이러니함을 말한다.
 
파니(루 드 라쥬)와 장(멜빌 푸포)은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저녁엔 사교 파티, 주말엔 별장에서 사냥을 즐기는 이상적인 상류사회 커플이다. 어느 날, 파니가 고등학교 동창 알랭(닐스 슈네데르)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둘은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고, 예기치 못한 삶의 아이러니에 휘말리게 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 이후 오랜만에 50번째 장편 연출작 '럭키 데이 인 파리'로 돌아온 우디 앨런 감독은 인생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 우연이 어떻게 끼어드는지 막장 로맨스로 시작해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블랙 코미디로 마무리해 보여준다.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
영화 초반은 상류층 남성의 '트로피 와이프'로 불리는 파니가 자신의 삶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우연히 마주친 고교 동창으로 인해 가까스로 잠재운 내면의 소란이 외도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로맨스물인 것 같기도 하고, '돈'과 '가십'에 열광하는 상류층의 모습을 풍자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니는 장의 열렬한 구애에 결혼한 후 전형적인 상류사회에 속해 살아간다. 값비싼 반지를 사주지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끼기 싫고, 파티에 가지만 그곳에서 '트로피 와이프'라 불리는 게 싫다. 남편이 자신을 많이 아껴주는 것 같지만, 집착이 심한 남편이 불편하기도 하다. 상류사회 모임에 가도 사람들은 '돈'만 외치는 게 영 껄끄럽다.
 
그러던 파니는 고교 시절 동창 알랭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가 오랜 시간 자신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전형적이지 않은 우연한 만남, 남편과는 다른 자유로움, 트로피 와이프 이전 예술을 꿈꾸던 영혼을 다시 꺼낸 것 같은 기분 등이 뒤섞이며 알랭과 바람을 피운다.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에서 볼 법한 막장 로맨스는 장이 아내를 의심하며 미행을 붙이고, 결국 알랭의 살인을 사주하면서 블랙 코미디 가득한 인생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길을 튼다.
 
영화 내내 많이 등장하고 곱씹게 되는 단어는 '우연'과 '아이러니'다. 사교모임에서 사람들은 장의 동업자가 죽은 것을 두고 가십성 발언들을 이어간다. 우연한 죽음일까, 의도된 살인일까. 그러나 장이 알랭의 죽음을 사주한 이후, 우연은 의도였을 것이란 확신이 생긴다. 알랭의 죽음이 누군가의 의도로 이뤄진 것처럼 말이다.
 
이상한 우연에 대한 가십을 들은 파니의 엄마 카미유(발레리 르메르시에)는 범죄소설 마니아로서의 감을 바탕으로 알랭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여긴다. 장의 동업자의 죽음, 알랭의 실종 사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을 확신한 카미유는 딸 파니에게 경고하지만, 우연히 이를 엿들은 장으로 인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장은 행운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가 운을 만들어 왔다고 이야기한다. 우연한 행운이 아닌 의도된 운으로 상류층에 진입했고, 파니를 얻었으며, 장애물인 알랭까지 치웠다. 그런데 우연히 듣게 된 카미유의 발언으로 그는 또 다른 장애물까지 치우고 완벽하게 파니를 손에 쥐고자 한다. 운을 만들어 온 것처럼, 이번에도 우연을 가장한 죽음으로 자신의 운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우연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다고, 장은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운에 역습당해 불운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장의 죽음은 우연일까, 의도된 죽음일까. 대상이 바뀐 것뿐이니 이것 역시 스스로 만들어 낸 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디 앨런이 만들어 낸 운의 역설과 아이러니한 인생의 단면에 웃음이 나올 정도다.
 
인생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길을 선택해 걸어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운명은 장난처럼 인간의 삶을 파고들 때가 있다. 의도치 않게, 정말 우연히 원하지 않았던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한다.
 
행운과 불운이 지뢰처럼 깔려있는 삶이란 길을 걸어가면서 한 끗 차이로 누군가는 행운을 밟기도 하고, 누군가는 불운을 밟기도 한다. 그것이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이 '럭키 데이 인 파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우리의 삶이다.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스틸컷. 해피송 제공
우연으로 가득한 '럭키 데이 인 파리'는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살풍경한 장면조차도 웃음이 나오게끔 하는 감독의 재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감독은 아무래도 뉴욕('레이니 데이 인 뉴욕')보다는 파리('럭키 데이 인 파리')가 더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우디 앨런으로 돌아온 걸 보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 파니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니 역을 맡은 배우 루 드 라쥬의 얼굴은 허비 행콕의 '캔털루프 아일랜드'(Cantaloupe Island)의 리듬과 어울리며 아이러니하게도 흔들림 없이 다가온다.
 
아마 우연히 '럭키 데이 인 파리'로 루 드 라쥬를 처음 만났다면,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호연을 보여준다. 루를 만난 건 우연이지만, 루의 연기와 그만의 매력에 빠져드는 건 필연일 것이다.
 
96분 상영, 11월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포스터. 해피송 제공외화 '럭키 데이 인 파리' 포스터. 해피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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