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각종 소음과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한 야시장의 화려하고 분주함 속에는 어떤 삶이 숨겨져 있을까. 어린아이의 시선에 야시장의 삶은 어떻게 보일까. 션 베이커 감독이 제작하고 그의 오랜 동료 쩌우스칭 감독이 연출한 '왼손잡이 소녀'는 나를 한계 지으려는 '왼손'을 받아들이고, '삶'이란 야시장을 사랑하게 만든다.
싱글맘 슈펀(자넬 차이)은 시골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정이안(시 유안 마), 정이징(니나 예) 두 딸과 타이베이로 돌아와 야시장에 국수 가게를 연다. 할아버지가 매일 같이 저주처럼 퍼부었던 "'악마의 손' 왼손을 쓰면 악마를 돕는다"는 말이 진짜였을까, 아니면 이징이 왼손으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60번째 생신 잔치에서 3대에 걸친 가족의 비밀이 폭발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아노라' 션 베이커 감독이 각본·편집·제작으로 지원에 나선 '왼손잡이 소녀'(감독 쩌우스칭)은 왼손잡이에 대한 오랜 미신을 바탕으로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벗어나 자신의 일상을 찾은 세 모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외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여전히 싱글맘, 이혼가정, 고졸 등 사회가 정한 어떤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일종의 '왼손잡이' 취급을 받는다. 다수의 삶에서 벗어난 '소수', 규칙을 벗어난 존재 등의 '낙인'이 찍히며 자기자신으로 존재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혼해서 아이를 홀로 기르는 엄마 슈펀, 대학에 가지 못한 이안, 왼손잡이인 이징까지 이들은 바로 '왼손잡이는 악마의 손'과 같이 고정관념과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인물들이다. 특히나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성에게 많은 제약이 따르는 사회에서 이들의 삶은 더욱 녹록지 않다.
할아버지는 왼손잡이인 이징에게 "왼손은 더러워. 악마의 손이야" "왼손을 쓰면 악마가 도와주는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왼손을 써왔던 이징은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후 왼손과 오른손을 구분 짓는다.
외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이징은 나쁜 짓을 하는 건 '악마의 왼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왼손으로는 나쁜 행동을 하고, 밥을 먹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일상은 오른손으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징은 자신의 '왼손'이 저지른 최악의 일로 인해 죄책감에 빠진 후 왼손을 팔토시로 묶어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돈이 없어 눈물 흘리는 엄마를 위해 나쁜 짓을 하고자 악마 왼손의 봉인을 풀고 할머니의 서류를 훔치지만, 이징의 나쁜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가 경찰에 잡혀가는 걸 막는다. 할머니는 그런 이징의 왼손을 '신의 손'이라고 부른다.
어른들에게 왼손은 악마의 손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이징의 생각과 행동은 귀여울 따름이다. 그만큼 이징을 통해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관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그걸 믿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왼손잡이'처럼 세상으로부터 감춰야 할 것 같은 일들은 할머니의 생신 잔치에서 터져 나온다. 야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슈펀과 슈펀의 새 남자 친구를 향한 불편한 시선들, 그 시선들 사이에서 자신의 숨겨온 비밀을 밝히는 이안으로 인해 할머니의 생신 잔치는 엉망진창이 된다.
외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그러나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의 편견으로 엉망진창이었던 세 모녀의 삶은 비로소 일상을 되찾게 된다. 자신들의 삶이 잘못됐다고, 밑바닥이라고 여겼던 모든 시선이 사실은 '엉망진창'이었고,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알렸기에 세 모녀는 야시장에서 웃으며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왼손잡이 소녀'는 왼손잡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보여줌으로써 열국 슈펀과 이안을 향한 고정관념 역시 오래된 전통이라 부르는 미신만큼이나 부질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왼손잡이'에 대한 잘못된 생각만큼이나 슈펀과 이안을 향한 시선과 생각들 역시 얼마나 말도 안 되고, 편견에 사로잡힌 것인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저 왼손을 사용할 뿐이지, 왼손잡이 자체가 잘못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슈펀과 이안의 삶은 만만치 않다. 각자만의 슬픔과 상처를 지닌 채 그들은 오늘도 살아내고, 버텨낸다. 그러나 영화가 마냥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불 꺼진 야시장의 새카만 모습처럼 어둡기도 하지만, 색색의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진 것처럼 밝음도 존재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의 길고 짧은 터널을 만나 지나고, 그 끝에 빛을 만난다.
그렇게 어떠한 외부의 시선과 말들에도 결국 서로를 지켜내고 살아가는 세 모녀가 얼마나 강인하고 반짝이는지, 우리가 지닌 각자의 '왼손'이 '악마의 손'이 아닌 그저 왼손일 뿐임이라는 걸 받아들일 용기를 얻게 된다.
슈펀과 이안, 이징의 삶은 마치 야시장과 같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람들과 소음에 힘겨울 때도 있지만, 웃음과 생기가 넘치는 야시장처럼 그들의 삶도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그것이 감독이 야시장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야시장, 야시장을 닮은 세 모녀를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법이 '휴대전화'다.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는 그렇기에 야시장 한가운데로, 사람들 사이로, 삶의 지근거리로 밀착해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폰 특유의 색감과 야시장의 빛이 만나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대만 야시장과 이징 가족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왼손잡이 소녀'를 보면 대만 그리고 야시장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징을 연기한 니나 예는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왼손잡이 소녀'에 따뜻하고 생생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영화를 보는 순간, 야시장만큼이나 니나 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션 베이커 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 온 쩌우스칭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경험했으며,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얼마나 따뜻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 '왼손잡이 소녀'로 증명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도시, 어떤 인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지 기대된다.
참고로 '손 안의 세상'인 휴대전화가 영화 경험의 대세가 됐고, 영화 역시 휴대전화로 촬영했지만 절대 휴대전화로 보면 안 될 영화다. 세 모녀가 편견을 넘어 세상으로 나와 반짝거리는 모습을 극장에서 만나길 추천한다.
108분 상영, 11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외화 '왼손잡이 소녀' 포스터.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