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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원하고 대중이 필요로 할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최영주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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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영화'를 대중문화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대중'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또 대중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폴 토마스 앤더슨, 약칭 'PTA'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는 동시에 이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 감독상을 석권한 감독. 전 세계 영화인이 사랑하는 천재.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팬텀 스레드' '리코리쉬 피자' 등을 연출한 작가주의 연출자 'PTA'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라는 생애 첫 블록버스터를 선보였다.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화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권의 사회·문화·정치적 지형을 뒤바꾼 반정부 운동인 68혁명의 구호와 저항을 그린 영화의 초반, 그러니까 과거를 다룬 부분은 오히려 폭풍처럼 쉴 새 없이 화려하고 강렬함이 몰아친다. 그러나 16년 뒤인 현재로 오면서 오히려 영화는 보다 차분하게 흘러간다.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커다란 골조는 아버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납치된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구하기 위해 납치한 숙적 스티븐 J. 록조(숀 펜)를 추격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여성'이 놓여 있다. 퍼피디아(테야나)로 시작해 딸 윌라로 끝나는 영화는 여성 혁명가를 변방이 아닌 핵심으로 끌고 들어왔다.
 
퍼피디아가 록조에 붙잡히고 자취를 감추면서 프렌치75 이름으로 활동하던 혁명가들도 사라지거나 흩어졌지만, 록조를 비롯한 백인 남성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노년의 록조와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 단체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구성원들은 마치 오래된 혐오와 차별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구시대적 인물이면서도 동시대적인 인물 록조와 클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폭력의 근간이다.
 
록조가 집요하게 쫓는 밥 퍼거슨을 두고 퍼피디아의 가족들은 밥이 혁명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말한다. 퍼피디아와 다른 이들이 내부로 침투할 때도 밥은 바깥에서 폭탄을 터트릴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혁명가이고, 아웃사이더일지라도 혁명의 최전선에 한 발 담근 인물이다.

혁명가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웃사이더였지만 혁명의 불꽃을 피워냈던 밥은 암호도 잊었지만, 딸을 지키겠다는 의지만은 잃지 않는다. 딸에 대한 사랑과 보호, 그리고 퍼피디아에 대한 사랑 역시 여전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윌라가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혁명에 나선다.
 
여기서 윌라가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라는 점은 퍼피디아와 록조의 관계와 함께 주목해 봐야 할 지점 중 하나다. 윌라의 생물학적 아버지, 영화 시작부터 얽혀있는 폭력과 섹스는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반복되는 인종차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특징으로 분류되는 인종이 박해와 차별의 이면에 존재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이 결국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중요한 것은 퍼피디아와 밥의 유산이 윌라에게도 이어졌고, 그것은 곧 새로운 저항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실패와 배신, 절망과 위협 속에서도 윌라를 시작점에 서게 한 것은 '사랑'이다.
 
혁명은 흩어지기도 하고, 모습을 감추기도 하고, 혁명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혁명'이 지닌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실패할지라도, 진창에 처박힐지라도 혁명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는 사랑이라는 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는 사실 지금 시대에서 중요한 이야기이자 되새겨볼 지점이다. 혐오와 차별이 지배한 세상에서 이에 맞설 수 있는 건 그것에 반대되는 단어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에는 내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퍼피디아와 밥 등 영화 속 '혁명가'로 불리는 인물들도 인상적이지만, 그들만큼 눈에 띄는 인물은 세르지오(베니시오 델 토로)다. 그는 스스로를 혁명가로 지칭하지는 않지만, 이민자들을 돕고 밥을 지원한다. 그런 세르지오는 일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혁명 중이다.
 
"자유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세르지오는 우왕좌왕하는 혁명가 밥 앞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최전선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혁명에 가담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일상의 혁명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방식이다.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혁명은 반드시 거대하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총을 들고 폭탄을 터트려야만 혁명이 아니다.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용기를 내는 것, 그것 역시도 혁명의 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들이 모여 두려움을 누르고 자유를 되찾게 만든다. 이는 이미 우리가 12·3 이후 경험했으며, 그 이전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사람들이 해 온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이유와 어떤 신념을 갖고 저항의 의지를 이어가는지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다. 그 모든 저항이 모여 자유라는 이름의 다양성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PTA는 엄혹한 시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의 앞에서 분노와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술과 대마초에 찌든 밥 퍼거슨조차 어떻게 다시 일어나 다음 세대의 혁명가를 지켜내고 응원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냉혹한 시대 앞에 희망과 미래는 아직 있다고 이야기한다. 냉소적인 영화가 말하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인 것이다.
 
이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에서 PTA가 선보인 후반부 고속도로 카체이싱 장면은 올해 최고의 카체이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도적이다. 특별한 기교 없이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도로의 굴곡 자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마치 영화의 제목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처럼 앞은 희미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굴곡에도 혁명은 이어지고, 혁명인 이제 시작일 뿐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PTA는 미국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마다 카메라를 가져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비록 어느 시대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가 됐다. '미국을 위대하게' 앞에 저항했던 이들은 사라지거나 흩어졌을지언정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앞에 68혁명의 유훈을 이은 자들과 저항하는 이들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영화 속 "딸깍, 치직, 펑"이란 구호처럼 저항 정신이 미약할지라도 선명한 불꽃으로 재점화돼 다시 타오를 때다.
 
이 모든 것을 너무 무겁지 않게,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하는 블랙 코미디처럼 만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그 자체로 볼거리와 숨 쉴 틈을 제공한다. 록조를 연기한 숀 펜 역시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며 납작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베니시오 델 토로, 테야나 테일러, 체이스 인피니티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연을 펼치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토록 정치적이면서 대중적이고,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혁명적인, 냉소적이면서 희망적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PTA라 가능했는지 모른다. '대중적'이라는 말은 오락적이라는 말보다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의미일 테다. 그런 점에서 PTA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가장 대중적인 영화다.
 
161분 상영, 10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외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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