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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웃긴 '어쩔수가없다'에서 정말 흥미롭게 봐야 할 것들[최영주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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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정말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무한 경쟁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과 신랄한 풍자를 담은 박찬욱표 블랙 코미디 '어쩔수가없다'는 '블랙 코미디'란 장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모범적 영화처럼 정말 어둡고 또 정말 웃기다. 그리고 정말 영화적인 체험으로 가득하다.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는 아내 미리(손예진),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는다. 목이 잘려 나가는 듯한 충격에 괴로워하던 만수는 가족을 위해 석 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그는 1년 넘게 마트에서 일하며 면접장을 전전하고, 급기야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무작정 '문 제지'를 찾아가 필사적으로 이력서를 내밀지만, 선출(박희순) 반장 앞에서 굴욕만 당한 만수는 모종의 결심을 한다.
 
베니스와 토론토를 거쳐 부산까지 찍고 드디어 관객들 앞에 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진 듯 보이는, 마치 그려낸 듯한 집과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 만수가 해고 후 재취업하려는 고군분투를 따라간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노동자의 모가지를 자르는 과정에서 관리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해고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해고된 노동자는 부당함에 대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채 실직자 신세가 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해고된 만수는 자신에게 폭력으로 돌아온 그 말을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해고 노동자 만수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영화 초반, 만수는 해고를 두고 미국에서는 도끼질한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모가지라고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는 일종의 떡밥처럼, 도끼질 당한 피해자 만수가 누군가의 모가지를 치러 다니는 가해자가 된 상황이 된 블랙 코미디를 가리키는 대사가 된다.
 
자본의 횡포로 노동자들은 해고되지만, 이는 노사의 문제가 아니라 노노 갈등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영화 속 만수와 다른 경쟁자들의 갈등 역시 노동자 간 갈등을 상징한다. 이러한 사회 자체가 블랙 코미디라 할 수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인 지점을 가장 개별적인 단위인 만수라는 개인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 속 인물 간에 벌어지는 여러 소동과 대화들은 가장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존재들의 모습이자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에 대한 풍자가 된다.
 
AI라는 신기술이 일상을 파고든 현재, 모든 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상징인 종이를 만드는 제지회사에 다니는 만수는 끝까지 제지회사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못해 살인까지 한다.
 
가장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른 인간 만수가 결국 AI와 로봇이라는 비인간적인 존재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정말 아이러니하면서도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처럼 비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날로그적인 건 만수와 종이뿐이다. 결국 비인간적인 사회로 들어오기 위해 인간적인 것을 버려야 했던 어느 인간의 결말은 매섭게 웃기면서도 슬프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마지막 면접에서 만수는 사람이 AI로 대체됐음에도 이를 관리할 '한 사람'은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게 담겨있다. 무한 경쟁과 낙오가 당연시된 사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보여준 만수는 자본주의가 비난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때로는 모든 것을 편리하게 넘기게 도와준다. 해고해도, 살인해도, 도둑질해도, 그 모든 것을 묵인할 때도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또 면죄부를 쥐여준다.
 
이는 만수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영화 속 만수의 가족들도, 만수가 죽인 대상도, 누군가의 죽음을 모른척하거나 가담한 미리와 아라(염혜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진실을 숨기고, 모른척하거나, 적극적으로 숨긴다.
 
그러나 그 기저에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다. 어쩔 수가 없다는 각자의 이유로 아슬아슬한 균열을 만들고, 다시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간신히 봉합하려는 모습은 조소 같으면서도 애처로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어쩔수가없다'에는 흥미로운 구도도 등장한다. 그 중 하나는 만수와 딸 리원(최소율)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일종의 '반향어'라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만수는 자기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따라 한다. 늘 손바닥에 중요한 키워드를 적어놓은 후 외워둔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자폐를 앓는 딸 리원 역시 마찬가지다. 리원은 누군가 한 말을 듣고 기억해 반복하고, 곡 전체가 아닌 분절된 단위로만 첼로를 연주한다.
 
반향어가 일종의 언어 학습 과정이자 감정 표출 방법이라고 한다면, 만수와 리원은 오롯이 자신만의 언어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던 인물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위치에 있던 만수가 가해자의 위치로 간 후, 다시 말해 경쟁자들을 죽이고 재취업에 성공한 후 더 이상 타인의 말을 따라 하지도 않고 주눅 들지도 않은 채 '자신의 말'을 발화한다. 딸 리원 역시 만수의 해고로 잠시 떠나보내야 했던 반려견 시투와 리투가 돌아온 후 자신만의 언어로 만든 악보를 보며 곡을 연주한다. 영화는 이러한 만수의 변화와 딸의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만수는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끝에 자기 언어를 얻고, 리원은 시투와 리투를 잃었다가 되찾은 끝에 자기 언어를 연주한다. 무언가를 잃었다가 다시 얻은 자가 갖게 된 자기만의 언어는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도 '어쩔수가없다'를 파헤쳐보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제공
'웃프다'는 미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표현해 어떤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웃게 만드는 건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병헌을 비롯한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등 모든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동시에 뛰어난 케미와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웃어도 되나 싶을 때도 웃게 되고, 웃길 때는 더 웃게 된다. 그러면서도 아프고 슬프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 작품답게 당연하게도 미장센이나 음악, 캐릭터 등이 다 훌륭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특히 재밌는 건 촬영과 편집이다. 반사경을 이용한 장면 등 다양하고 독특한 앵글의 사용과 줌조차도 스릴 넘치는 촬영은 물론 촬영 그리고 매치 컷 등을 활용한 편집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어쩌면 점점 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촬영과 편집이 시각적인 재미를 극대화하며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이런 촬영과 편집을 눈여겨본다면, '어쩔수가없다'의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138분 상영, 9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CJ ENM 제공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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